1913년 미국 중앙은행(Fed)이 창설되기 전까지 JP모건은 사실상 Fed였다. 1907년 10월 미국 3위 신탁회사였던 니커보커신탁이 파산했다. 뱅크런이 벌어졌고,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이때 JP모건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위기에 몰린 은행에 돈을 빌려주고, 대형 은행들의 협의를 이끌어냈다. 1985년 미국 정부의 채무 불이행 위기 때도 해결사는 JP모건이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저서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JP모건은 미국을 두 번의 파산 위기에서 구했다”고 썼다.
하지만 1912년 JP모건 설립자인 존 피어폰트(JP) 모건은 미국 하원위원회에 불려 나갔다. 자신과 동업자들의 금융조합이 112개 기업의 341개 이사직을 차지했다는 혐의로 취조받았다. 어떤 이들은 그를 ‘금융가의 모세’라고 극찬했지만, ‘자본주의 탐욕의 화신’이라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었다.
설립자 JP 모건은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과 오버랩된다. JP모건은 지난 1일 파산 위기에 몰린 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인수했다. 실리콘밸리은행, 시그니처은행에 이어 올 들어 세 번째 은행 붕괴다. 다이먼 회장은 “은행 위기가 끝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에도 위기에 빠진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잇따라 인수, 금융시장의 큰불을 껐다. ‘월가의 모세’를 자처하며 던진 승부수 덕분에 JP모건은 단숨에 미국 1위 은행이 됐다. 두 회사를 헐값에 인수해 약점인 주식중개업과 주택담보대출 사업을 보강했다. 이번에도 실리콘밸리 자산가와 기업 고객을 대거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다이먼 회장은 국회가 아니라 법정에 선다. 10대 소녀 수천 명을 꾀어낸 희대의 성 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의 범죄를 인지하고도 이익을 위해 거래를 끊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월가 황제들’의 두 얼굴이다.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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