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 3월 6일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 방안은 현재의 1주 단위 연장근로 관리단위 울타리를 넓혀 월, 분기, 반기, 1년 단위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선택 과정에 근로자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근로자대표제를 구체화하도록 했다.
먼저 ‘불안’이다. 고용부는 입법예고 당시 근로시간 개편을 위한 노사 합의 시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근로자대표와 합의해야 하는데, 현행법상 명칭만 있고 선출 절차나 권한·책무에 관한 규정이 없는 근로자대표제를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또 부분근로자대표제를 도입해 근로 형태에 따른 불합리도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근로자대표제 관련 입법은 2020년 노사정 합의 이후 방치돼 있고, 설령 입법이 된다고 하더라도 노조가 없는 영세사업장에서 사용자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을 수 있는 안전장치는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입법만 되면 직장인 누구나 ‘제주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은,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듣기에는 공허함 그 자체였다.
고질적인 한국 노사관계의 불신도 한몫했다. 한국 노사관계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맨 밑바닥에 자리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세밀한 물밑전략 없는 정부의 과도한 자신감은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근로시간 개혁이 좌초하면서 노동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1주 52시간’이라는 규제를 풀어 노사 자율로 근로시간을 정하게 하려던 정부가 여론을 되돌리기 위해 포괄임금제 집중 단속 등 다시 규제의 칼을 뽑은 것이다. 야당에선 이때다 싶어 포괄임금제 금지 입법까지 추진하고 나섰다. 개혁이라 칭하기도 민망했던 근로시간 개편마저 흔들리면서 진짜 노동개혁 시계는 점점 늦춰지고 있다.
백승현 경제부 차장·좋은일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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