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미국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싼 맛’에 타는 차로 통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파격적인 10년 무상보증 혜택으로 미국 시장에 빠르게 파고들었지만 ‘서민 차’ 이미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시장의 시선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현대차·기아의 바뀐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미국 자동차 딜러들의 인식이다. 완성차 제조와 유통이 분리된 미국에선 거대 판매망을 갖춘 딜러들이 제조사와 계약을 맺고 차를 판다. 어떤 제조사의 차를 판매할지 결정할 땐 소비자 수요는 물론 자동차 품질, 브랜드 가치, 사후 서비스까지 따진다. 이런 딜러들이 ‘가장 팔고 싶어 하는 차 브랜드 톱3’에 기아가 이름을 올렸다.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뉴스는 최근 “기아 대리점을 인수하고 싶어하는 딜러들의 관심이 뜨겁다”며 “이 시장에서 1급 매물인 혼다·도요타·포르쉐에 맞먹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대리점 컨설팅 업체인 오조그 컨설팅그룹의 오조그 회장은 “10년 전만 해도 ‘현대차·기아 낙인’이 있었지만 이제 그런 오명은 사라졌다”며 “모두가 팔고 싶어하는 브랜드가 됐다”고 말했다.
기아 브랜드 가치가 오르면서 지난해 북미 전역에선 기아 대리점 775곳 중 27곳(3.5%)의 주인이 바뀌었다. 전체 자동차 대리점 매매율(2.2%)을 웃돌았다. 기아 대리점을 하려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대리점 매각 컨설팅 업체 케리건어드바이저에 따르면 지난해 기아와 현대차 대리점의 평균 매출은 처음으로 혼다를 넘어섰다.
현지 딜러들은 이런 추세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케리건어드바이저가 지난해 6~10월 자동차 딜러 600여 곳을 대상으로 주요 브랜드의 예상 가치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각각 46%, 45%는 기아와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가 향후 12개월간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처음으로 도요타(41%)를 제치고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이 비중이 19%에 불과했다. 케리건 어드바이저는 이런 밸류에이션(가치평가) 개선 배경으로 미국 소비자의 강한 수요와 높아지는 시장 점유율, 정교한 판매망 관리 등을 꼽았다.
현지 딜러들은 기아의 차 품질·디자인뿐 아니라 사후 서비스와 부품 수급, 딜러와의 관계 구축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미국 내 자동차 판매 15위 딜러인 켄 갠리 오토그룹은 최근 3년 새 기아 대리점만 여섯 곳을 사들였다. 전체 대리점(48곳) 중 쉐보레와 함께 가장 많다. 켄 갠리 최고경영자(CEO)는 “기아는 자동차부터 마케팅, 경영진까지 탁월하다”며 “모든 게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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