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1년 전 취임사를 다시 보게 된다. 윤 대통령은 첫머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윤 정부 1년의 국정 운영은 총론적으로 취임사에서 강조한 방향성과 일치한다. 큰 골격은 제대로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가치 외교’를 추구한 외교·안보 정책에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윤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해온 전임 정부들과 달리 한·미 동맹 강화라는 명확성을 택했다. 그 결과, 윤 대통령의 지난달 미국 국빈 방문에서 한·미 핵협의그룹(NCG)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끌어냈다.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국형 확장억제를 문서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지지율 타격을 감수하면서 한·일 관계 정상화에 나선 윤 대통령의 결단도 평가할 만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답방이 앞당겨지면서 12년 만에 셔틀 정상외교가 본격 재개됐다. 경제·안보 분야 양국 협력은 대부분 복원됐다. 히로시마에서 이달 한·미·일 정상회담까지 열리면 북핵 위협에 맞선 3각 공조는 더욱 견고해질 전망이다. 다만 한·미·일 밀착에 따른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경제 분야에서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 정부의 주도면밀한 외교력이 요구된다.
경제정책과 미래세대를 위한 개혁에서는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1년이었다. 전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서 벗어나 건전재정의 기틀을 닦은 것은 평가할 대목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와 징벌적 과세 개편, 법인세 감면 등을 통한 감세 정책에 시동을 걸었고,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 원전 생태계를 소생시켰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임한 윤 대통령이 기업 기(氣) 살리기와 세일즈 외교에 진력하는 일관된 모습도 인상적이다. 정부가 어제 반도체 배터리 등에 이어 전기차를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해 최대 35%의 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한 것도 고무적이다. 윤 정부의 이런 정책 기조 전환은 그러나 거야의 벽에 막혀 입법으로 강력하게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건전재정을 법제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의 사회적경제법 동시 처리 요구에 막혀 좌초한 게 대표적이다. 윤 정부가 지난 1년간 국회에 제출한 법안 144개 중 처리된 법안은 36건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내세운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 역시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집권 2년 차다. 통상의 경우라면 국정과제라는 골격에 살을 붙이는 작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하지만 2년 차에도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총선이라는 블랙홀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게 뻔하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한 가운데 총선이 다가올수록 선심성 정책에 대한 유혹도 커진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포퓰리즘에 취약한 여야 정치권을 견인하겠다는 결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에게 정부 정책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윤 정부 개혁의 성패는 내년 총선에 달린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입법 불능에 빠진 국회를 탓하며 총선만 기다리기에는 대내외적 여건이 너무나 엄중하다. 왕도가 있을 수 없다. 정권을 교체해준 국민을 믿고, 3대 개혁 등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에 초석을 놓는 일에 매진하는 게 답이다. 그러고 나서 국민의 현명한 평가와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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