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위기를 맞은 대표적인 두 나라 한국과 일본이 지난 3월 말 사흘 간격으로 대대적인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한 나라의 인구가 유지되려면 출산율이 2.07명을 넘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출산율 2.07명과는 까마득한 격차가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 일런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소멸 위기를 경고한 일본의 출산율 1.30명이 부러울 지경이다.
두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저출산 정책을 비교해 본다. 우열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20년 이상 먼저 저출산 대책을 시작한 선배 나라다. 일본과 비교해보면 한국 인구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지 알 수 있다.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3월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제하고 대책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 회의를 주재한 것은 7년 만이다. 일본은 3월31일 '차원이 다른 저출산 종합 대책 초안'을 발표했다.
지난 1월23일 기시다 총리가 2023년 정기 국회 개원 연설에서 "올해는 육아 지원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삼겠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한지 3개월 만에 등장한 구체안이었다.
두 나라는 지금까지와 같은 백화점식 정책을 남발하지 않고 효과적인 저출산 대책을 골라서 선택과 집중하겠다고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년간 280조 원을 쏟아붓고도 저출산을 해결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돌봄과 교육, 일·육아 병행, 주거, 양육비용, 건강 등을 저출산 정책의 5대 핵심 분야로 선정하고 각 분야마다 국민의 체감도가 높은 정책을 추려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670조원의 연간 예산 가운데 저출산 대책에 40조원을 배정하기로 했다.
일본은 젊은 세대의 소득 증가, 사회의 구조·의식 개혁, 모든 육아세대 지원이라는 3대 대책을 3년간 집중 실시한다. 2020년 일본은 가족 관련 사회보장비로 10조7536억엔(약 106조원)을 썼다. 국내총생산(GDP)의 2.01%다. 기시다 총리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으로 관련 예산을 두배 늘린다고 선언했다.
한일 양국의 저출산 대책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보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지만 얼핏 봐도 한국은 중점 분야가 5개이다보니 3개로 좁힌 일본에 비해 전방위 대책이란 인상이 강하다. 선택과 집중을 힘들게 만드는 한국의 현실 때문으로 해석된다.
저출산 대책은 단순히 말하자면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을 제거하는 정책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은 취업난, 집값 폭등,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낮은 워라벨 등 오늘날 한국 사회가 끌어안고 있는 과제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선택과 집중을 하기 쉬운 여건이다. 취업난이 없고, 주거 형태가 주로 월세 임대이기 때문에 내집 마련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고등학생의 절반(2019년 53.7%)만 대학에 가다보니 일부 계층을 제외하면 사교육비 부담에서도 자유롭다.
일본의 중고교생들의 절반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학창시절에는 써클활동에 매진하다가 가업을 물려받거나 사회에 진출한다. 중학교에 진학하면 모두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입시경쟁을 벌이는 한국과 달리 사교육비 때문에 가계가 휘청일 일이 적다.
또 일본은 저출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를 겪은지 30년이 넘어가면서 고령화는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노인국가라고 하지만 2044년이면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한국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고령화는 대응만 하고 저출산 대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과 이제부터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는 고령화와 동시에 싸워야 한다. 인구문제의 가장 힘든 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전쟁에 비유하자면 동쪽과 서쪽 두 개 전선의 적과 한꺼번에 싸워야 하는 셈이다. 한 덩어리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저출산 전선'도 사실은 취업, 주택, 교육, 소득 등 네 개의 적과 동시에 맞서야 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