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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금형회사 대표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금형 배울 사람 없냐고 묻는 게 습관이 됐다. 1년 내내 구인 공고를 내도 지원자를 보기 힘든 데다 어쩌다 면접이 성사돼도 현장을 살펴본 뒤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발을 돌리기 일쑤여서다. 대형 고객사를 여럿 두고 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년을 훌쩍 넘긴 숙련공들이 체력 저하를 호소해 비상이다. 도리어 고객사가 이 회사의 기술 맥이 끊길 것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1966년 처음 시행된 지방기능경기대회는 40년 넘게 매년 참가자 수가 증가했다. 2010년엔 9878명으로 정점을 찍으며 '메이드인코리아'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가자 수가 줄고 있다. 기계와 금속분과 직종에서의 감소세는 심각하다. 응시자가 없어 경기를 열지 못하거나 대회 참가만으로 금·은·동메달을 받는 직종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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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업종으로 인식되는 금형은 문제가 심각하다. 올해 지방기능경기대회 세종과 제주 지역에선 기계분과 금형과 컴퓨터 수치제어(CNC)선반, CNC밀링 응시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인천과 울산에서도 3개 직종 응시자는 각각 15명과 12명에 불과했다. 금형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경기 남부의 한 금형업체 대표는 "금형은 한 명의 숙련공이 열 사람 몫을 하기 때문에 도제식 교육이 필수지만 사람이 없어 숙련공 육성은 꿈도 못꾼다"고 고개를 저었다.
금속분과의 용접·배관·주조도 마찬가지다. 광주 지역은 3개 직종 응시자가 아예 없었다. 주조의 경우 지난해 17개 시·도 중 11곳에서 출전 선수가 없어 경기를 열지 못했다. 기능경기대회 응시자가 감소한 데는 참가 인원의 80%를 차지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참여 저조가 결정적이다. 특성화고는 매년 미달이다. 지난해 서울 특성화고 68개교는 정원의 78.4%만 신입생을 채웠다. 인천 충원율은 74.3%에 그쳤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교사는 유튜버를 하겠다는 학생들과 상담을 하느라 진땀을 빼는 날이 많아졌다. 과거엔 명장이 되겠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3년여 전부턴 분위기가 달라졌다. "힘들게 기술을 왜 배워요? 유튜버나 라방(라이브 방송)을 하는 게 훨씬 낫죠"라고 말하는 제자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한숨을 쉬었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와 숙련공에 대한 관심 저조 등으로 지방기능경기대회 참가 선수가 줄고 있는 현실은 직업계고의 신입생이 매년 감소하는 것과 연관이 깊다. 경남의 한 특성화고 교사는 "1970년대만 해도 기능올림픽과 숙련공 위상은 올림픽 국가대표급이었다"며 "입상자들은 서울 도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대통령이 직접 훈장을 걸어줬지만 지금은 혜택이 크게 줄었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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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기능올림픽대회 순위도 예전같지 않다. 우리나라는 1977년 23회 대회를 시작으로 19차례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숙련공 육성을 가장 잘하는 국가였다. 하지만 2015년 브라질 대회 우승 이후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2019년 러시아 대회에선 3위에 그쳐 1971년(4위) 이후 역대 최저 성적을 냈다. 지난해도 2위에 머물렀다. '메이드인코리아'의 영광이 사라질 것이라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용접공들이 떠나는 이유는 낮은 임금, 고용 불안 등 복합적이다. 경기 평택의 삼성 반도체 팹 건설 현장에 출근하는 20년 차 베테랑 용접공 A씨는 이곳에 오기 전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일했다. 그는 최근 조선소 반장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전화를 수차례 받았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다. A씨는 "울산보다 평택에서 버는 게 월 200만원 가량 더 많다"며 "팹 건설 붐이 불고 있어 평택 일감이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도장은 파도 및 바다 염분 때문에 안전 문제와 직결돼 숙련도가 중요하지만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이 갈수록 줄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선박 도장 인력 2786명 중 20대는 132명으로 전체의 4.7%, 30대는 428명으로 15.4%에 그쳤다. 40대에서 60대 이상 근로자들은 2226명으로 80%에 달했다. 조선·해양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조선해양 산업 인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 인력이 채워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구직자의 기피 현상(31.5%)'이다. 정부는 조선업계 외국인 근로자 총원을 늘려 숙련공 이탈에 대비한다는 구상이지만 상당수가 단순 노무직이어서 숙련공 몫을 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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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단순 인력에 대해선 체계적인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숙련공에 대해선 정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늘 제기된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호봉제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생산성에 따라 보상이 책정되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며 "외국인 근로자 수급 정책도 기피 업종 공급에서 고급 인력 유치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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