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사주 의무 소각, 또 하나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입력 2023-05-14 18:03   수정 2023-05-15 00:09

기업이 발행한 주식이 한 주주의 손에서 다른 주주의 손으로 지속 유통되다가 일시적으로 회사 품으로 다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회사 품으로 들어온 주식을 ‘자기주식’ 또는 ‘자사주’라고 부른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시키는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가 금융위가 해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에 대해서는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하는 주된 이유는 유용한 재무관리 수단이자 위기 시 주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사주 의무소각이라는 방안이 거론된 이유는 기업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주주환원 정책이라는 평가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제도를 개선할 때는 다른 제도와의 연계성을 충분히 고려해 정당성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

상법은 자사주에 관해 다양한 기능을 부여한 기본법이다. 상법은 과거 기업이 소각할 목적 없이 취득한 자사주에 대해 상당한 시기에 처분할 것을 요구했지만 2011년 4월 개정에서 이런 요건을 삭제했다. 그래서 취득한 자사주를 영구히 회사가 보유할 수도 있고 다시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다. 이제 와서 일시적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모두 없애야 한다면, 기업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고 주식의 생명력인 유통성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자사주 의무 소각 도입은 현행 상법보다 훨씬 더 엄격한 규제를 가하는 것이어서 시간을 두고 그 당위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설령 자사주 의무 소각을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주식 소각 규모 등 구체적 사항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 현행 상법에 따라 허용되는 자사주 취득의 유형은 두 가지다. 배당 가능한 이익을 재원으로 자사주를 취득하는 경우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기업이 어쩔 수 없이 자사주를 떠안게 되는 경우다. 전자는 그 자사주를 소각시키더라도 자본금이 축소되지 않으므로 은행 등 채권자를 보호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후자는 자사주 소각이 바로 자본금 축소로 이어진다. 예컨대 배당 가능한 이익이 없는 상장기업이 물적분할 과정에서 그 분할에 반대하는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매수한 뒤 이를 소각했다면 이 기업은 자본금 규모가 축소돼 신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소각하는 과정에서 채권자가 이의를 제기해 그 은행에 빌린 돈을 다 갚아야 한다면 과연 이 기업이 제대로 시장에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상법은 자사주를 기업의 재무적 목적과 구조조정 등을 위해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예컨대 임직원이 스톡옵션을 행사하는 경우와 교환사채를 교환할 때, 상환사채를 상환할 때도 자사주를 부여할 수 있다. 회사가 합병, 분할합병, 주식교환 등을 하는 경우에 자사주를 그 대가로 교부할 수 있다. 만약 자사주 의무 소각으로 인해 기업이 재무적 운영이나 구조조정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면 이는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자사주 의무 소각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논의와 이해관계자들의 합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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