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은 ‘전투기의 눈’인 능동형 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다수 국산 장비를 장착했다. 하지만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F414 엔진 두 기를 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GE사와 제휴를 통해 라이선스 방식으로 생산한다. 원천 기술은 GE사에 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하청을 받아 조립과 생산을 하는 형태다.
핵심 기술이 없다 보니 KF-21 엔진의 국산화율(1호기 기준)은 39%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국방 전략기술 수준 조사 보고서’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첨단 엔진 분야에서 한국 방위산업 기업의 기술 수준은 최고 선진국(미국)과 비교해 60%에 그쳤다. 국기연은 “낮은 터빈 입구 온도 설계, 고신뢰성 소재 데이터 부재, 감항 인증 관련 기술 부족 등 기술 격차가 큰 상태”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첨단엔진 분야는 엔진 핵심소재·부품과 시험 인프라 등을 개발해 고성능·고신뢰성 엔진을 확보하는 사업이다. 미국 GE와 프랫&휘트니(P&W), 영국 롤스로이스 3개사가 항공기 엔진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국산 전투기로 개발 중인 KF-21이 GE 기술을 쓰고 있고, 폴란드에 수출된 ‘FA-50’ 경공격기 역시 GE의 F404-102 엔진을 사용한다. FA-50은 록히드마틴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전수한 무기다.
방산업계에선 이런 기술 격차로 인해 국산 전투기의 제3국 수출이 곧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은 자국 엔진이 사용된 제품, 장비에 대해 자국 승인 없이 제3국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국내 원전 수출을 두고 미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수력원자력에 소송을 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한국 공군이 양산된 KF-21로 무장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수출까지 허용할 것인지 예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군용 엔진기술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도해왔다. 2019년부터는 무인항공기용 완제 터보팬 엔진 통합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무인기 엔진은 유인기 엔진보다 개발 수준이 낮아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국방기술 중 ‘극초음속 추진’ 분야는 민간 기업의 기술 수준이 미국의 60%에 불과했다. 기술 격차도 20년에 달한다. 극초음속 추진 기술은 마하5(시속 약 6000㎞) 이상 속력을 내는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토대가 된다. 우리 군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확보할 경우 유사시 북한을 선제타격하는 ‘킬체인’에 활용할 수 있다. 올초 국방부는 업무보고에서 ‘극초음속 비행체 추진기술 및 형상 설계’ 연구 계획을 밝혔다. 국내에선 ADD 주도로 한국형 극초음속 비행체 ‘하이코어’를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사일 방어’ 기술 수준은 미국과 비교해 62.2%(민간 기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격차는 8.5년이다. 국기연은 “극초음속 미사일, 탄도미사일 등 첨단 유도무기에 대한 방어 기술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미흡하다”고 분석했다. 방위사업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이나 항공기를 요격할 수 있는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Ⅱ) 등을 2035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적군의 핵심 무기와 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포·탄도미사일 등 ‘고위력 정밀타격’ 분야의 기술 격차는 7.5년(민간 기업 기준)이었다. 우리 군은 ‘현무 시리즈’ 등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면서 기술 격차를 줄였지만 아직 지상·함상 발사 무기에 치중돼 있다는 평가다. 국기연은 “공중 발사 무기체계에 대한 기술 개발이 상대적으로 적고, 극초음속·장거리 유도탄 등 무기체계의 기술 수준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미래의 전장인 우주 국방기술도 격차가 두드러진 분야로 꼽혔다. 민간 기업 기준 우주 비행체는 9.1년(기술 수준율 66.0%), 초정밀 위성항법 기술은 7.9년(65.7%), 우주기반 감시정찰은 5.3년(75.0%)의 기술 격차가 있었다. 미국은 인공위성을 활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조기경보 체계인 ‘우주기반 적외선 시스템(SBIRS)’을 갖추고 있는 등 우주 감시정찰 분야의 최고 선진국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전장 판단이나 유무인 복합 기술 등은 격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현/이해성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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