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노사 단체협약 중 37%에 법 위반 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노조 가입 대상 직원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하면 해고하는 규정을 둔 공공기관도 있었다.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공공부문에 있을 수 없는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479개 공공부문 노사 단협(공무원 165개, 교육 42개, 공공기관 272개)을 점검한 결과 179개 기관에서 불법·무효 조항을 확인했다고 17일 발표했다. 노조 상급단체별로 불법·무효 비율을 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51.8%(199개 중 103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17.1%(123개 중 21개)였다. 양대 노총이 아니거나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노조는 35.0%(157개 중 55개)였다. 특히 민주노총 소속 공무원 관련 노조는 사측과 맺은 단협에 불법·무효 요소가 포함된 비율이 96.3%(82개 중 79개)에 달했다.
불법·무효까지는 아니지만 135개 기관(28.2%)의 단협에 노조와 조합원에 대한 불공정한 특혜, 노조의 인사·경영권 침해 등 불합리한 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공공부문에는 국민 세금이 지원되는 만큼 높은 수준의 책임성과 도덕성, 민주성이 요구된다”며 “불법 단체협약과 노조 규약에 대해서는 노동위원회 의결을 얻어 시정 명령하고, 불응하면 형사 처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도 법을 위반하거나 불합리한 단협이 다수 확인됐다. 한 공공기관 단협에는 ‘노조 가입 대상 직원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노조를 탈퇴하면 해고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노조 탈퇴로 인한 신분상 불이익을 금지한 노동조합법에 어긋나는 조항이다.
한 공무원 노조 단협에는 ‘승진 심사위원회를 꾸릴 때 노조와 합의하거나 노조 추천 위원을 30% 이상 참여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다른 공무원 노조 단협엔 기관이 정원을 축소할 때 노사가 합의해야 한다는 규정이 담겼다. 고용부 관계자는 “교섭 사항이 아닌 임용권 등을 단협에 규정한 것은 불법”이라고 말했다.
규약 중에 ‘조합 탈퇴를 선동 또는 주도하는 조합원은 위원장이 직권으로 권한을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는 공무원 노조도 있었다. 조합활동을 하다 다친 경우 공무상 재해로 간주하는 등 ‘무효 조항’ 또한 많았다. 무효 조항은 공무원·교원 노조가 법령이나 조례로 규정해야 할 내용을 단협으로 규정한 경우다. 공무상 재해 판단은 단협이 아니라 법령에 따르도록 돼 있다.
위법까지는 아니어도 노조 특혜, 인사·경영권 침해로 볼 수 있는 불합리한 단협을 둔 기관도 많았다. 한 교원 노조의 단협엔 ‘학부모를 대상으로 노조 홍보 활동을 보장한다’거나 ‘학교 방송시설을 이용한 노조 홍보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한 국립대 노사는 국가 예산으로 워크숍과 체육문화활동비 등 연 3000만원을 지원하는 단협을 체결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실태조사에 대해 성명서를 내고 “불법·불합리라는 딱지를 붙여 단협의 존재 의미마저 없애겠다는 속내”라고 반발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정부가 판단한 ‘불합리’의 기준 자체가 불합리하다”며 “노사관계 기본원리를 무시한 노조 때리기식 단협 시정명령을 중단하라”고 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노사를 불문하고 각종 불법과 특권에는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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