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단기채권 판매 수단인 랩어카운트와 신탁을 통한 증권사들의 채권 ‘돌려막기’에 대한 대대적인 검사에 들어갔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이뤄지던 자전거래, 파킹거래 등에 대해 징계가 이뤄질 수 있어 증권업계가 검사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1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증권사들의 채권형 랩어카운트·신탁 운용 실태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자전거래, 채권 파킹 등 불건전 영업 행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첫 검사 대상은 하나증권이다. 다른 증권사도 차례대로 조사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 검사는 작년 말 금리가 급등하면서 채권형 랩어카운트·신탁에서 많게는 수조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증권사별 평가손실은 최대 1000억원 이상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올 들어 금리가 하락하면서 이 같은 평가손실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관련돼 있지만 10여 개사의 평가손실 규모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고객은 법인, 공제회, 연기금 등 대형 기관이다.
한 증권사 채권 담당 임원은 “고객도 손실 난 것을 알리기를 원치 않는 상황이라 환매를 미루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며 “원금보장형 상품처럼 팔았기 때문에 손실 난 상태로 투자금을 돌려줄 수 없고 환매에 사용할 새로운 투자금도 들어오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2010년께부터 시중금리 대비 1%포인트가량의 금리를 더 제공하는 단기 채권형 상품을 원금보장형처럼 판매했다. 하지만 지난해 금리가 치솟으면서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장단기 금리차를 이용한 ‘만기불일치 운용’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3개월 만기 상품에 3개월 만기 채권이 아니라 10년 만기 회사채를 넣는 식이다.
증권사들은 만기 시 보유 채권을 매도해 투자금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신규 고객의 자금을 기존 고객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만기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관행이었다. 증권사들끼리 채권을 실제 거래되는 것처럼 사고파는 채권 파킹도 상당히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증권사가 운용하는 단기 채권 상품 규모는 50조~100조원으로 추정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만기가 긴 채권을 경쟁적으로 담았고, 이에 수반되는 만기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금 돌려막기를 해왔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 과정에서 채권형 랩어카운트·신탁의 이런 불합리한 운용 관행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장의 약한 고리를 들여다보고 불건전 영업행위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증권사들의 채권 편법·불법 거래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금융감독당국의 감독 부실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박의명/선한결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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