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 일본의 태양 떠올랐다…탈중국 대안 급부상

입력 2023-05-21 15:34   수정 2023-06-20 00:01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일본의 태양이 떠올랐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 G7(주요 7개국) 정상들이 일본 히로시마로 향할 무렵 전 세계 투자자들의 메일함엔 이 같은 제목의 리서치 노트가 날아들었다. 만수르 모히우딘 싱가포르은행 수석경제학자가 일본 경제의 부흥 조짐에 관해 짚은 보고서다.
◆확장 모멘텀 올라탄 日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 '일본의 위용이 돌아왔다(Japan gets its swag­ger back)'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싱가포르 은행 보고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다른 G7 지도자들이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거시경제 상황을 이끌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은행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인플레이션 상승세 △신임 일본 중앙은행 총재의 통화완화적 기조 유지 △기록적 엔저 등이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30년'으로부터 활력을 되찾게 해줄 요인들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일본 정부에 따르면 1분기 실질 GDP는 전 분기보다 0.4% 증가해 3개 분기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이런 추세가 1년 동안 이어진다고 가정하고 산출한 연간 환산(연율) 경제성장률은 1.6%로 집계돼 예상치를 상회했다. 여행과 외식 등 서비스 부문 소비가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 회복하면서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 소비는 전 분기보다 0.6% 늘었다. 일본 기업들의 자본지출(설비투자)도 전 분기보다 0.9% 늘어나 GDP 증가분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 은행은 "일본 경제활동이 코로나19로부터 더디게 재개한 탓에 작년 하반기 기술적 경기침체를 겪었지만, 이후 견고하게 회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특히 이번 내각부 발표에서 GDP 디플레이터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GDP 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으로, 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경제활동을 반영하는 종합적 물가지수다. 1분기 GDP 디플레이터는 2% 상승해 작년 4분기의 1.2%보다 높아졌고, 일본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도 달성했다. 이 지수의 상승세는 디플레이션 완화 조짐을 보여준다. 19일 발표된 일본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도 전년 동월보다 3.4%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 은행은 "경제 재개로 일본의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우에다 가즈오 신임 일본은행 총재는 전임자의 통화완화적 기조를 당분간 이어갈 것이라는 점, 엔화가 1998년 이후 기록적인 약세를 유지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일본 내 위험자산 투자 심리를 자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탈중국 대안은 일본
지경학적 요인도 일본 경제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미·중의 갈등으로 인해 '경제 안보'가 주요국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대만 등의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을 탈중국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마이크론, 인텔, 삼성전자, TSMC 등이 일본에 대한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누적 투자금액은 2조엔(약 19조)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FT는 또 "일본 시장은 중국에 대한 직접 투자를 꺼리는 외국인들이 일본 투자를 통해 탈중국을 표방하면서도 중국 시장에 간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유동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최대 교역국은 여전히 중국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무라증권의 기업금융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윌콕스는 "중국 이슈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고 유서 깊은 투자 시장, 세계적 수준의 기업을 보유한 일본에 매우 좋은 기회"라며 "아시아에 투자하고 싶은 해외 투자자들이 향후 5~10년 동안 투자할 곳이 바로 일본"이라고 말했다.

일본 주식시장은 모처럼 호황기를 맞이했다. 거시적 요인들에다 일본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일본 시장 복귀 등이 더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지난 17일 일본증시 주요 지수 중 하나인 토픽스 지수는 1990년 8월(2126선)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를 돌파했다. 이 지수는 19일엔 2161.69로 장을 마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토픽스는 앞으로 33%가량 더 상승해 1980년대 일본 버블경제의 최정점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론도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일본에서는 개혁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언행일치가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야만 경기 확장세가 더욱 힘을 얻었다"며 "기시다 총리가 이 두 가지를 모두 실현할 수 있는 정부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일본증시 랠리는 액티브 자금이 아니라 전체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에 의한 것이었다"면서 "액티브 투자자들이 찾아와야 진짜 호황기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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