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플랫폼으로 음식을 주문하면서 외상을 요구하는 '신종 구걸'이 늘면서 골머리를 앓는 자영업자도 덩달아 늘어나는 모양새다.
21일 자영업자들이 모인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자영업자 A씨는 '요즘 꽤 보인다는 배달요청사항'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글에는 여러 고객의 주문 요청사항이 담겼다.
이들 고객은 "문자로 계좌번호 주면 이틀 뒤에 이체해드린다. 외상 어려우면 취소해달라", "사정이 있어서 5월 10일에 급여 받고 배달비 포함해 바로 계좌이체 시켜드리면 안 되나. 안되면 취소하겠다" 등 문구를 요청사항으로 남겼다.
일부 고객들은 자신의 궁핍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장님, 정말 죄송한데 제가 어제부터 밥을 못 먹어서 그렇다. 실례가 안 된다면 내일 돈 들어오는데 내일 이체해드리는 건 힘들겠나", "임신한 아내가 사흘째 못 먹고 있다. 도움 부탁드린다. 돈은 25일에 갖다 드린다. 도와달라" 등의 요청사항을 남겼다.
A씨와 같은 점주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한 번 당했는데 이사 가서 돈 못 받은 적 있다", "오픈 초에 3번 정도 전화로 주문해 외상하고 며칠 뒤에 돈 준다고 한 사람, 1년 넘은 지금 똑같은 레퍼토리로 외상해 달라더라" 등 A씨와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밖에 다른 자영업자들은 "신종구걸이다", "우리도 어렵다", "그 와중에 야무지게 추가까지 했다", "이런 요청 받으면 난감할 듯"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자영업자는 "TV에서 이런 주문을 선행으로 포장하고 가게에 '돈쭐내자' 하니 거지를 양산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해당 카페에는 비슷한 내용의 글이 올라와 '훈훈한 미담'으로 퍼진 적 있다. 서울에서 분식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 중인 B씨가 "임신 중인 미혼모인데 너무 배가 고프다. 당장은 돈이 없어서 다음 주말 전까지 (음식값을) 이체해드리겠다"는 내용의 요청사항과 함께 들어온 주문을 받고, 고민 끝에 음식을 배달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손님은 약속한 날짜에 돈을 보냈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이 손님에게 B씨가 일자리까지 주기로 했다는 후일담을 전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고물가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탓에 외식업 점주들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일부 소비자들의 이러한 행태를 자영업자들이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배달 앱 등으로 주문한 뒤 상습으로 음식 값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사기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실제 지난달 부산지법 형사6단독(사경화 판사)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씨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하고 배상신청인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명했다.
B씨는 지난 2021년 6월 13일 배달 앱으로 14만5000원 상당의 음식을 주문한 뒤 배달 기사가 음식을 가져오자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음식값을 송금하겠다"고 거짓말한 뒤 지급하지 않는 등 같은 해 7월 26일까지 54회에 걸쳐 207만원 상당의 음식을 받고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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