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이직’이 유행이다. 환승이직은 직장을 그만두지 않은 채 구직활동을 하고 새 직장이 정해지면 바로 이직하는 세태를 묘사하는 신조어다. 구인구직 플랫폼 잡코리아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대부분은 환승이직에 대해 ‘당연하다’ 또는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편이다. 환승이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은 2%가 채 안 됐다.
환승이직은 국내만의 현상은 아니다. 2022년 말 미국에서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었다. 가상현실 분야에서 큰 손실을 본 메타, 인플레이션으로 긴축경영에 들어간 아마존, 온라인 광고 매출이 뚝 떨어진 알파벳 등 대표적 빅테크 기업들이 어려운 경영환경으로 인원을 크게 감축했다. 빅테크 기업에서 시작된 구조조정 바람은 유통, 금융기업으로 이어졌다.
불황과 잠재적 실직이 예견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경력기회를 찾는데 적극적이다. 현 직장을 다니면서도 새로운 스킬을 학습하는데 애쓰는 한편, 구직사이트에 자신의 이력을 올리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일부 아마존 직원은 상사가 볼 수 있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링크드인에 구직 중(#OPENTOWORK)임을 분명히 밝힌다. 이러한 현상을 미국에서는 ‘커리어 쿠셔닝(Career Cushioning)’이라 부른다.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동시에 다음 커리어를 찾아 이직을 준비하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 의미하는 바가 환승이직과 흡사하다.
예기치 않은 실직에 대비해 더 나은 경력기회를 적극적으로 찾는 모습은 직원 입장에서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조직 내 환승이직이 늘어나면 업무 분위기를 망치고 인재이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퇴사한 인력을 대체하는데 드는 비용은 HR의 어깨를 더 짓누른다. 환승이직 분위기가 만연한 지금, HR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무엇보다 구성원과의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이 우선이다. 조직이 구성원과 함께 지향하려는 가치를 명확히 공유하는 한편, 구성원이 희망하는 경력목표를 확인하고 그러한 경력목표를 조직 안에서 어떻게 펼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자신의 미래 경력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환승이직을 준비하는 직원이 많다. 이들에게는 현 직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경력비전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에서 자신의 필요성을 인지할 때 환승이직에 대한 마음을 돌이킬 가능성이 높다.
환승이직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도 필요하다. 환승이직은 곧 인재유출이라는 경각심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업무성과가 저조하거나 조직에 적합하지 않은 직원이 있다면 환승이직은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리더의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어떤 직원을 지켜야 할지, 어떤 인재가 대체가 어려운지 등을 고민하면서 구성원을 면밀히 주시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런 측면에서 넷플릭스의 키퍼테스트(Keeper Test)를 주목할만 하다. 넷플릭스는 ‘비범한 동료들로 회사를 채운다’는 인재전략을 펼친다. 평범한 직원과 탁월한 직원이 섞여 있는 조직이 아닌, 탁월한 직원으로만 이루어진 드림팀을 원한다. 탁월한 인재가 서로에게 배우고 의욕을 불어넣는, 이른바 인재밀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지급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넷플릭스의 인재전략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재밀도 전략 뒤에는 냉정함이 숨겨져 있다.
넥플릭스에서는 조직에서 더 배울게 없거나 자신의 탁월성을 입증할 수 없다면 자신보다 더 잘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다른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이런 조직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키퍼테스트다. 키퍼테스트는 '부하직원이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 비슷한 일을 하겠다고 하면 붙잡겠는가?’라고 묻고 답하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판단되는 직원에게는 현재보다 높은 급여를 제안하지만, 붙잡고 싶은 인재가 아니다라는 답을 내리면 직원의 환승이직을 받아들인다. 넷플릭스는 매니저들에게 6개월에 한 번씩 키퍼테스트를 하라고 권장한다.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한 ‘일의 미래 연구’에 따르면 상당수 업무는 기계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큰 폭의 스킬 변화가 예상되는 일도 44%에 달한다. 이에 급변하는 일의 미래에 맞춰 고용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구성원의 큰 관심사다. 많은 이들이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에 힘쓰는 이유다.
구인구직 플랫폼 링크드인에서는 커리어 쿠셔닝을 위해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는 데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조사했다. 이에 응답자의 53%가 이미 적극적으로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있고, 35%는 또 다른 스킬을 추가로 습득하고 싶다고 답했다. 실제로 2022년 한 해 동안 링크드인 회원이 자신들의 프로필에 추가한 스킬은 3억 6500만 개에 달한다. 전년 대비 43%가 증가한 수치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보다 많은 보상만을 주는 회사를 원하지 않는다. 보상을 중요한 요소에서 배제한 건 아니지만, 이보다는 자신의 고용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업을 보다 선호한다. 조직이 나의 성장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고 느낄 때 구성원은 그 조직에 있어야 할 이유를 느낀다. 이에 고용경쟁력에 안정감을 줄 수 있는 회사차원의 커리어 쿠셔닝 방안이 요구된다.
오프라인 유통 중심의 월마트는 온라인 유통에 밀려 한때 위기를 겪었으나 2020년 신고가를 기록하는 등 크게 약진했다. 턴어라운드 배경에는 새로운 사업전략 뿐만 아니라 이에 맞춘 구성원 리스킬링이 한몫 했다. 월마트는 온라인 주문 상품에 대한 매장 픽업서비스를 확대하면서 '퍼스널 쇼퍼'라는 직무를 신설했다. 여기에 리스킬링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원이 퍼스널 쇼퍼로 직무 전환하는 걸 도왔다. 또한 헬스케어 관련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는데, 구성원에게 관련 자격증과 학위 취득을 위한 리스킬링을 지원한다. 이 역시 월마트가 헬스케어 분야로 진출하는데 큰 힘을 싣고 있다.
IBM은 2017년부터 ‘뉴 칼라 인증 프로그램(New Collar Certification Program)’을 운영한다. 뉴 칼러는 지식근로자(White Collar)나 노동근로자(Blue Collar)가 아닌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인재를 의미한다. 이에 시장에서 요구하는 디지털 스킬 교육을 통해 구성원들이 경력 전환을 돕는다.
KT 역시 ‘미래인재육성 프로젝트’라는 리스킬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미래 먹거리 분야의 실무형 인재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으로, 연령과 직급의 제한없이 KT 구성원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조직을 이미 잘 이해하는 기존 직원을 리스킬링 하는 것이 환승이직으로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 이러한 커리어 쿠셔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의 미래, 경기침체 등으로 환승이직과 커리어 쿠셔닝 세태는 직장인의 생존전략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조건적인 경각심과 거부감만으로는 이러한 흐름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진솔한 커뮤니케이션과 냉정한 판단, 고용경쟁력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 등이 어우러진 대응이 환승이직 시대의 보다 바람직한 HR의 자세가 될 것이다.
김주수 MERCER Korea 부사장/HR컨설팅 서비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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