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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조1000억 달러. 한화로 4경 원이 넘는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늘리기 위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이 600조 원이 조금 넘으니 그 60여 배, 상상이 안 되는 액수다. “한때 타결 가능성을 내비쳤던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를 둘러싼 백악관과 공화당의 실무협상이 일시 중단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다음 달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파월 의장이 금리 동결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의 금리 동향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서 늘 관심 대상이다. ‘주목을 끌고 있다’고 하지 않아도 내용 자체가 주목을 끄는 셈이다. 그것을 굳이 덧붙이는 것은 잘못 익힌 글쓰기 방법론일 뿐이다. 대부분 무심코 또는 습관적으로 붙인다. 이를 ‘상투적 표현의 오류’라고 한다. 이 오류는 자칫 눈에 거슬리는지 모른 채 지나가기도 한다. 그만큼 흔히 접할 수 있다.
저널리즘 언어는 팩트 위주로 구성된다. 앞에 ‘주목을 끄는’ 내용을 다 제시해놓고 뒤에서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고 하는 것은 습관성 덧붙임에 지나지 않는다. ‘화제가 되다/관심을 모으다/눈길을 끌다’ 같은 표현은 이 오류가 변형된 형태다. 모두 같은 유형의 군더더기이자 상투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고용 사정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은 고용시장의 구조적 문제 탓이며, 코로나로 인한 영향은 미미하다는 분석을 내놔 관심을 모은다.” 이 문장도 서술부에서 설명하고 해석해주고 있다. 서술부를 ‘~미미하다는 분석을 내놨다’로 끊어 쓰면 훨씬 간명하다.
힘 있는 문장은 ‘간결함’에서 나온다. 무심코 덧붙이는 이들 이중서술어는 너무도 흔해 이미 상투어가 됐다. 상투어는 ‘늘 써서 버릇이 되다시피 한 말’이다. 당연히 참신한 맛이 없어 식상한 느낌을 준다. 그런 말을 뒤에 덧붙이니 문장 흐름마저 늘어진다. 긴밀하고 매끄러운 마무리를 방해한다는 점에서 ‘커뮤니케이션 노이즈(잡음)’에 해당한다.
우리 눈에 익숙한 말이라는 점에서 상투어는 얼핏 관용구(관용어)와 비슷한 점도 있다. 관용어란 두 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해 각각의 단어 의미만으로는 전체 의미를 알 수 없는, 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어구(語句)를 말한다. ‘발’과 ‘넓다’가 어울려 ‘발이 넓다’라고 하면 ‘사교적이어서 아는 사람이 많다’를 뜻하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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