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 없이 쇳물을 뽑아낼 수 있는 수소환원제철 공정 상용화는 철강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꼽힌다. 유럽연합(EU)이 탄소 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2026년 시행하는 등 관련 규제가 갈수록 강화돼서다. 철강업은 단일 업종 중 탄소 배출이 가장 많은 산업으로 꼽힌다. 저(低)탄소 또는 무(無)탄소 철강을 생산하는 기업이 시장 주도권을 잡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업계가 ‘전기차 빅뱅’에 따라 100여 년 만에 산업 구도가 재편되는 것처럼 철강업계도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업화 속도에 따라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철강업은 이산화탄소(CO2)를 대거 발생하는 생산 구조다. 철광석(Fe2O3)에 석탄(C)을 넣어 이산화탄소를 떼어내 철(Fe)을 만들어내는 공법 때문이다. 포스코가 연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이 국내 전체 배출량의 12%를 차지할 정도다.
수소환원제철은 철강산업의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석탄 대신 수소(H2)를 철광석의 산소(O)와 붙여 물(H2O)을 만들어내는 친환경 공법이기 때문이다.
세계 철강업계는 이미 ‘착한 철강’을 만들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포스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쇳물을 뽑아낼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여주는 유동환원로 기술을 적용한 수소환원제철 공법을 채택했다. 스웨덴 SSAB와 유럽 아르셀로미탈, 일본제철 등은 이와 다른 샤프트 방식의 수소환원제철 공법을 선택했다. 수소환원제철 기술 속도가 가장 빠른 SSAB는 에너지기업 바텐팔과의 합작사인 HY브릿을 통해 데모플랜트를 짓고 있다. 2026년부터 이를 가동하겠다는 목표다. 아르셀로미탈은 지난 3월 수소환원제철 데모플랜트 설계에 들어갔다. 이들 기업은 2030년 이전에 대규모 플랜트를 지을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철강사들의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아직 실험 단계이거나, 수소 활용 비중이 최대 50%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진정한 의미의 수소환원제철 파일럿 설비 착공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철강산업 주도권을 쥘 ‘초격차’ 기술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포스코는 이를 통해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가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고로 매몰 비용, 투자비 등을 포함해 최대 40조원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EU와 일본 등은 수소환원제철 개발을 위해 조(兆) 단위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며 “한국 정부도 획기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수소환원제철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석탄 등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공법이다. 기존 공법에서는 석탄의 탄소(C)가 산소(O)와 만나 이산화탄소(CO2)로 배출되고, 철(Fe)이 쇳물로 나온다. 수소환원제철 공법을 이용하면 수소(H)를 넣어 산소를 떼어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대신 물(H2O)이 나온다. 아직 수소환원제철 공법을 상용화한 기업은 없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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