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달 11일 현대자동차 간부사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 일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차에는 1968년부터 전 직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있었는데, 2004년 7월 주 5일제가 도입되면서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에게만 적용하는 취업규칙을 간부사원 89%의 동의를 받아 따로 만들었다. 이에 일부 간부사원이 집단적 동의를 구하지 않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은 무효라며 미지급 수당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그러면서 집단적 동의권 남용 여부를 가르는 기준으로 △취업규칙 변경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사용자의 진지한 설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 없이 반대한 경우라고 적시했다. 사실상 ‘동의’ 절차는 강화했을 뿐 결과적으로는 달라진 점이 없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법조계에서는 친노동이나 친기업 성향을 가릴 것 없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취업규칙을 마치 단체협약인 양 근로자 동의를 전제했다는 점에서 노동계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싸움판이 열렸고 그 결과가 노사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담아 대법관 13명 중 6명은 기존 법리 폐기에 반대했다.
기업의 한숨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폐기하되, 객관적 변경 사유가 있고 합리적인 이유 없는 근로자 동의권 남용이 있었다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은 유효하다’는 ‘엎치나 메치나’ 식의 판결 덕에 다시 노조와의 전쟁터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역대 가장 좌편향이라는 지적은 차치하더라도 대법원은 무엇을 위해 45년 넘게 노사 모두에 안정적으로 작용해온 법리를 흔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백승현 경제부 차장 좋은일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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