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경상수지 기조적 흑자 없을수도…비은행도 관리해야"[강진규의 BOK워치]

입력 2023-06-12 10:00   수정 2023-06-12 15:15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경상수지의 기조적 흑자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국내외 상황이 빠르게 변하면서 한은의 유동성 관리 방식도 바뀌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경제상황에 대해선 근원물가가 더디게 내리고 있어 안심하긴 이르다고 봤다.
기조적 경상수지 흑자 없을 수도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은행 창립 73주년 기념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이제까지는 기조적인 경상수지 흑자로 국외부문에서 대규모 유동성이 계속 공급돼 왔기 때문에 한은의 유동성 관리도 이를 흡수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운용돼 왔지만 대내외 경제구조가 달라지면서 경상수지 기조는 물론 적정 유동성 규모 등이 변화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들어 경상수지는 1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2월과 4월에도 적자를 기록했다. 1~4월 누적 적자는 50억달러를 넘어선 상황이다. 이 총재는 "유동성 흡수 일변도에서 탄력적으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도록 제도나 운영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이 총재의 발언은 한은을 둘러싼 "제반 환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나왔다. 이 총재는 "저출산·고령화 등과 같은 내부적 요인뿐만 아니라 팬데믹 이후의 뉴노멀, 세계 경제의 분절화(fragmentation)와 지정학적 갈등 심화, 인공지능과 같은 혁신적인 IT기술 확산이 경제 전반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며 "새로운 환경에 맞게 과감히 변화를 준비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책대상을 비은행으로 확대해야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비중이 2000년대 들어 은행을 넘어섰고 한은금융망을 통한 결제액 비중도 지속적으로 커져왔으며, 은행과의 자금거래 확대로 은행·비은행 간 상호연계성도 증대됐다"며 "은행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국민경제 전체의 금융안정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한은이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은 없지만 감독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금융안정 목표 달성 방안을 마련해야한다는 것이 이 총재의 주장이다.

모바일 뱅킹 등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인해 자금흐름 규모가 커지고 위기전파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도 주시해야한다고 봤다. 금융기관의 위기 발생 시 대규모 뱅크런이 과거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상시적 대출제도 등 위기 감지 시 즉각 활용 가능한 정책 수단의 확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챗GPT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내부 업무에 적용해 일상적인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한다"고 덧붙였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도입하는 데 대비하겠다고도 했다.
근원물가,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
최근 경제상황에 대해선 근원 물가 흐름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3.3%까지 낮아졌지만 기조적 물가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는 더디게 둔화하고 있어 안심하기 이른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를 면밀히 점검하는 가운데 성장의 하방위험과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 그리고 미 연준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도 함께 고려하면서 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운용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점도 잘 지켜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최근 주택시장의 부진이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부동산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금융부문 리스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적 시계에서 금융불균형이 재차 누증되지 않도록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가계부채의 완만한 디레버리징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특히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에 따른 정교한 정책대응이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총재는 "지난 1년간은 물가안정을 최우선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별로 물가안정과 경기상황이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며 "각국 중앙은행의 능력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절간 같던 한은이 시끄러워졌다
이 총재는 이날 기념사에서 이같은 상황에서 한은 내부 경영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한은은 '경영인사 혁신방안'을 도입한 후 토론문화 확산, 자료공유 확대 등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 총재는 "한은사(寺) 이미지에서 탈피해 시끄러운 한은을 향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경제현안과 관련한 많은 보고서들이 외부로 공개되고 지역본부 직원들이 한은의 앰배서더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급여 문제, 권한의 하부위임, 워크 다이어트 등은 아직 체감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개선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의 인재확보 노력도 필요하다고 봤다. 이 총재는 "한은은 지난 수십 년간 최고 수준의 인재를 손쉽게 불러 모을 수 있었지만 민간부문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수 인재 확보에 대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며 "우수한 인재를 뽑는 노력 이상으로 들어온 직원을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양성하는 방향으로 인사정책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수한 인재여야 한국은행에 들어간다'는 과거의 평판에서 벗어나, 이제는 '한국은행에서 10년 동안 훈련받은 직원이라면 믿고 스카우트하고 싶다'라는 말이 정착되도록 노력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기념사를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맺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이 총재는 "선배들이 쌓아온 업적 위에 새로운 전통을 만들면서 위상을 높여나가자"며 "젊은 직원들이 변화의 한 가운데 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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