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 있는 A 경제부처에서 근무하는 사무관은 최근 업무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목덜미가 뻣뻣해질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본인이 맡은 정책실무에 대한 보고서를 과장에게 제출했다가 보고서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등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경험을 한 것이다.
공무원을 비롯한 직장인들에게 보고서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다. 특히 중앙부처는 입직 후 ‘보고서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집중적으로 훈련받는다. 통상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중앙부처에서 보고서 초안은 행시 출신 실무 사무관들이 작성한다. 경제정책방향 등 굵직한 현안 보고서는 기재부에서 내로라하는 에이스 사무관들이 돌아가며 맡기도 한다.
보고서로 인한 공무원들의 스트레스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내부 보고서뿐 아니라 정책 홍보를 위한 보도자료 스트레스까지 추가됐다는 것이 사무관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 4월부터 기재부 등 주요 부처를 중심으로 보도자료 양식을 일제히 개편했다. 기존 보도자료가 공급자 위주로 작성돼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워 형식과 내용 모두 일제히 바꿔야 한다는 대통령실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우선 신문 기사에서 전체 내용을 포괄하는 핵심 문장을 첫 번째 문단(리드)에 적는 것처럼 보도자료의 중요 포인트를 전면부터 내세웠다. 자료 내용도 최대한 풀어쓰도록 했다. 기존 보도자료의 문장 끝맺음이 보고서 형식이었다면 새 보도자료엔 ‘~~했습니다’라는 기사체로 바꿨다.
통상 보도자료 초안 작성은 실무 사무관들의 몫이다.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쓰게 되면서 보도자료 작성 시간과 부담이 훨씬 늘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보도자료 작성 방법을 놓고 과장급 간부들과 사무관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곳곳에서 들린다. 한 경제부처 사무관은 “새 양식으로 보도자료 초안을 제출했는데, 과장이 기존 양식과 비슷하게 뜯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과장이 고친 보고서를 보면 초안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털어놨다.
보고자료를 수정하는 과장급 간부들의 입장은 어떨까. 한 부처 과장급 간부는 “사무관이 쓴 보도자료를 어차피 나중에 뜯어고칠 수밖에 없다”며 “담당 사무관에게 지시를 내리면서도 모자란 시간을 쪼개 미리 내가 혼자서 자료를 써놓기도 한다”고 밝혔다. 사무관들 사이에서 이런 과장급 간부는 그나마 ‘양반’이라는 평가다.
보도자료 초안에 빨간색 줄을 수없이 쳐가며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해 오라고 요구하는 간부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사무관들의 지적이다. 사무관들 사이에선 이런 간부들의 이름을 이른바 ‘보고서 블랙리스트’로 부르며 공유하기도 한다. 특히 기재부에선 이런 간부들의 상당수가 소속 직원들이 매년 실시하는 상사 평가에서 ‘워스트 상사’로 꼽히거나 박한 평가를 받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보도자료는 내부 보고서와 달리 공무원이 아닌 수요자인 국민 시각에서 쓰는 것이 중요하다”며 “어려운 용어를 이해하기 어렵게 쓰면 훌륭한 자료라는 인식부터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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