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근원물가(에너지·식료품 제외 물가)가 오를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다. 올 들어 근원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긴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비해선 둔화 폭이 크지 않은 데다,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과 비용 상승 압력으로 근원물가 상승률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일각에서 물가 상승률 둔화를 이유로 ‘경제 운용의 중심축을 물가에서 경기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과 달리 한은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7월 6.3%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지난달까지 3%포인트 하락해 3.3%로 내려온 데 비해 근원물가는 하락 폭이 크지 않다.
근원물가 하락 폭은 최근 25년간 세 차례 주요 위기 때와 비교해도 크지 않다. 한은은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때의 물가 흐름을 분석한 결과 근원물가가 정점을 기록한 이후 6개월간 낙폭이 각각 2.2%포인트, 1.5%포인트, 1.3%포인트였다고 밝혔다. 현재의 근원물가 하락 폭(0.4%포인트)에 비해 3~5배가량 컸다.
근원물가가 더디게 둔화하는 것은 고용과 서비스업이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고용이 (당초 한은의) 예상 수준을 상회하고 있는데 양호한 고용 상황은 결국 경제 측면에서 소득과 소비를 늘려 근원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 물가는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 등 공급 요인과 민간소비 회복 등 수요 압력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높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이 같은 근원물가의 상방 압력이 예상보다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비용 상승 압력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정부 정책 측면에서 하반기 대중교통 요금 인상,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 유류세 인하 폭 축소, 전기·가스요금 추가 인상 등으로 인한 압력이 있을 수 있어서다.
다만 한은은 지난달 ‘경제 전망’에서 제시한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3.3%)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근원물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다소 커졌지만 ‘중간값’을 바꿀 정도는 아닌 상황으로 파악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근원물가 전망에 대해 “2~3개월 경직적이다가 (이후 상승 폭이) 좀 떨어질 텐데 다시 반등할지는 경기 등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은의 물가관리목표인 2%로 수렴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하반기 국제 유가 하락 등 ‘역(逆)기저효과’ 탓에 오는 8월부터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3%대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창호 한은 조사국장은 “하반기 이후 중국 경제의 회복도 물가를 상승시킬 수 있다”며 “올해 중반 이후 물가가 다시 높아져 등락하다가 연말께 3% 내외 수준을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발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3.5%)에 대한 조정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물가 안정에 따른 금리 인하 시점을 묻는 질문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2%로 수렴한다는 증거가 있어야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는데, 지금은 3%가 되는 것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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