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의 굴욕'…미국, 대중 유화모드로 돌아선 이유는 [한경 지정학+]

입력 2023-06-20 12:04   수정 2023-07-20 00:01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당시 광경은 그동안과 너무나 달랐다.

블링컨 장관이 한 쪽 테이블에 자리 잡고 맞은편엔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등 중국 측 인사들이 앉았다. 그리고 시 주석은 블링컨 장관과 왕이 사이에 있는 가운데 자리에 있었다.

마치 시 주석이 주재하는 회의에 블링컨 장관이 참석하는 모양새였다. 이런 식의 자리 배치는 미국 내 승계 서열 4위인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의에선 처음이다. 2018년 6월 마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시 주석과 만났을 때는 외교 관례대로 두 사람은 나란히 배치된 두 개의 의자에 앉았다.

이런 의전상의 수모를 무릅쓰고 미국이 중국과 대화하려 한 의도가 뭘까. 지난 2월 정찰풍선 사건 때만 해도 대중 강경모드였던 미국이 왜 갑자기 대중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걸까.

워싱턴 외교가에선 미국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제재의 틀을 사실상 완성한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에 대화를 먼저 요청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미국은 당장 급한 반도체와 배터리 관련 제재의 틀을 대부분 완성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동맹국이나 우방국과도 협력 제체를 굳건하게 갖췄다. 미국 우선주의로 동맹국들과 등을 돌렸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중국이 최근 미·중 국방장관 회동 선결 조건으로 제재 완화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반대 시각도 있다. 중국이 미국과 거리를 둔 중동과 중남미, 아프리카 등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국이 중재에 나서 앙숙관계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여기에 이스라엘까지 사우디와 화해에 나서자 곧바로 블링컨 장관이 사우디로 날아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나기도 했다.

미국이 대중 유화 모드로 돌아선 것이 자신감의 표현이든 중국 견제 시도든 미·중 대화가 본격화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때에 한국도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게 외교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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