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EU 의회(European Parliament) 홈페이지를 보면 지난 14일 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EU배터리법엔 한국 기업들에 부담이 되는 조항이 대거 포함됐다. ‘배터리 탈부착’이 가능한 스마트폰 판매를 의무화한 11조가 대표적이다.
EU는 법 적용 시기를 공표하지 않고 ‘안전 등과 관련한 이유가 있을 경우엔 일체형도 허용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둬 협상 가능성을 열어놨다. 하지만 삼성전자,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애플은 배터리 탈부착 스마트폰을 출시한 적이 없고 삼성전자도 2015년 갤럭시S6부터 ‘일체형 배터리’를 프리미엄 폰에 적용하고 있다.
오는 10월부터 EU가 시범 시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도 기업들의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철강, 알루미늄 등을 수입하는 기업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보고하고 기준을 초과하면 탄소배출권을 강제로 구매해야 한다. EU 역내에 제품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 LG 계열사들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시행 예정인 ‘공급망 실사지침’은 EU 내 매출 1억5000만유로(약 2114억원) 이상 기업에 ‘경영상의 기밀’을 요구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기업 사업장·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한 환경 훼손과 인권 침해 여부,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 등을 파악해 개선하고 공개해야 한다.
예컨대 스마트폰 배터리 탈부착을 가능하게 하면 배터리 재활용이 쉬워진다. 배터리 원자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사용된 폐배터리에서 핵심 원자재 회수를 의무화하고 새 배터리를 생산할 때 ‘재활용 원료’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게 한 조항도 비슷한 의도로 분석된다.
16개 전략원자재를 집중 관리해 원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핵심원자재법’에 대해서도 ‘다른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략원자재를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 공급망 점검 결과를 2년마다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에 국내 기업들의 상황을 알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가전업체 관계자는 “EU의 친환경 규제가 너무 빠르게 시행되고 있다”며 “미국과 아시아의 정보기술(IT) 업체들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란 의심까지 든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