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29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재무장관회의에서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특히 이번 통화스와프는 전액 ‘달러’ 기반인 것으로 확인됐다. 원화와 엔화를 주고받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이 원화를 맡기면 일본에서 달러화로 주는 방식이다. 그런 만큼 간접적인 한·미 통화스와프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달러 베이스로 한·일 통화스와프를 시작할 것”이라며 “규모는 최소 20억달러 이상”이라고 말했다. 20억달러는 한국과 일본이 통화스와프를 처음 맺은 2001년과 같은 규모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2001년 20억달러로 시작해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2012년 700억달러로 불어났지만 이후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2015년 종결됐다.
과거 한·일 통화스와프는 원화와 엔화를 교환하거나, 원화를 제공하고 엔화와 달러를 함께 빌려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원·엔 스와프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번에 한·일 통화스와프를 재개하면서 ‘100% 달러 스와프’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번 한·일 통화스와프는 위안부 문제 등 외교 갈등으로 단절된 한·일 관계를 복원하는 상징적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도 지금 한국 경제가 금융위기 같은 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 게 아닌 만큼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과의 통화스와프가 필요한 게 아니며, 한·일 관계 정상화라는 상징적 측면에서 통화스와프를 추진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30억달러 상당의 원·엔화 스와프가 체결된 2005년 5월을 제외하면 모두 달러가 섞인 ‘하이브리드’ 형태였다. 즉 한국이 일본에 원화를 맡기고 일본에서 엔화와 달러를 함께 빌려오는 방식이 많았다.
이번에 재개되는 한·일 통화스와프는 전액 ‘달러 베이스’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스와프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이미 넉넉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09억8000만달러에 달한다. 외환보유액 순위는 세계 9위(4월 말 기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이 29일 도쿄에서 회담한 뒤 통화스와프를 재개할 것”이라며 “스와프 규모 등에 대한 막판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와프 규모는 크지 않을 전망이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무르익은 한·일 간 해빙 무드가 경제적 협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정부도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한·일 통화스와프 추진에 대해 ‘경제적 효과보다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취지로 설명해왔다.
그럼에도 한·일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김승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이 유사시 달러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측면에서 기축통화국인 일본보다 한국에 유리한 내용”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등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높아진 환리스크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엔화 약세 상황에 맞닥뜨린 일본에도 달러 기반의 통화스와프가 긍정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에 엔화를 제공하는 대신 달러를 빌려와 엔화 약세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 입장에서도 엔화 가치가 달러보다 지나치게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오르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달러 기반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과 일본 모두 자국 통화 가치를 안정화하는 윈윈 조치”라고 말했다. 허세민 기자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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