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미술관에 우주가 펼쳐졌다

입력 2023-06-28 18:22   수정 2023-06-29 01:00


서울 청담동에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 송은. 이 건물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40m 길이의 벽에 광활한 우주가 펼쳐진다. 군데군데 수놓은 반짝이는 행성 위를 인공위성이 조용히 가로지른다. 잠시 뒤 푸른 지구와 함께 천천히 떠오르는 글자들.

“1968년 12월 24일 아폴로 8호가 달 주위를 네 번째 공전하고 있을 때 우주선의 작은 창문 밖으로 놀라운 것을 보았다. ‘오 세상에! 저기 좀 봐!’ 마치 거울로 자기 얼굴을 처음 본 사람처럼, 그날 저녁 지구로 송출되는 방송에서 우주 비행사는 성경의 창세기를 읽었다.”

미디어 아티스트 권혜원의 신작 ‘궤도 위에서’(2023)는 이렇게 9분짜리 영상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처음으로 지구를 마주했는지 조명한다. 그는 2019년 송은미술대상을 받은 작가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권 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풍경 중 많은 것은 기계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라며 “인류가 기계의 힘을 빌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을 마주한 순간, 그 관점과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작품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지구는 관객이 없는, 모두가 배우인 극장이 됐다’는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의 말처럼, 권 작가는 3개 층에 걸친 송은 전시장을 ‘거대한 극장’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서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은 객관적인 제3자의 눈이 아니라, 기계라는 필터를 통해 자연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배우가 된다. 전시 제목이 ‘행성 극장’인 이유다.

권 작가는 이런 식으로 시공간을 잡아 비튼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선형적 시간을 헝클어뜨리는가 하면,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복한다. 3층 전시장에 있는 영상 작품 ‘불가능한 세계’(2023)가 그렇다. 2년 가까이 같은 위치에 카메라를 고정한 뒤 팔당호의 풍경을 찍었다. 이후 영상을 빨리감기 하거나 편집해서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함께 뒤섞인 팔당호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아냈다.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흔히 봄 다음에는 여름, 가을 다음에는 겨울이 온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인간 중심적인 관점일 수 있거든요. 강이 얼고 있는 동시에 녹는 모습을 통해 시간에 대한 관념을 깨뜨린 거죠.”

더 직관적인 작품도 있다. 2층에서 3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통로의 긴 유리창엔 군데군데 유리로 만들어진 렌즈가 붙어 있다. 제목은 ‘빛나는 기억의 파편들’. 렌즈의 종류와 곡률에 따라 바깥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카메라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사람들의 인식을 깨뜨린다.

쉬운 전시는 아니지만 작품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연출의 참신함에 감탄하게 된다. 전시는 7월 29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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