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고속 충전

입력 2023-06-28 18:36   수정 2023-06-29 00:24

“방금 무지개 보셨어요?” 얼마 전 차에 동승한 지인이 물었지만 아차, 스마트폰을 보느라 놓치고 말았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딸아이에게 스마트폰 없이는 살기 힘든 ‘포노 사피엔스’ 이야기를 꺼내며 잔소리를 했던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4차 산업혁명을 넘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이 주를 이루는 5차 산업혁명 이야기까지 부각되는 요즘이다. 거기다가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강국인 대한민국은 성인 스마트폰 사용률이 97%에 이른다. 디지털, 모바일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도 하루 일과의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 태블릿PC와 함께한다. 스마트기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어떻게 일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 편리함과 효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검색 한번이면 대부분의 궁금증을 몇 초 만에 해소할 수 있고, 요즘은 챗GPT를 통해 더 깊고 넓은 정보를 얻고 있다.

이런 디지털 홍수 속에서 필자는 얼마 전 한 지인이 매일 최소 30분 ‘디지털 로그아웃’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하루 중 언제 어디든 30분만큼은 디지털 기기와 완전히 분리한 채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그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놀랍게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요즘은 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멍때리는 시간’을 보내는데 지친 몸과 마음이 고속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 꽤 흥미로웠다. 그는 괜스레 스마트폰을 자주 쳐다보게 되고, 배터리가 없으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는 요즘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필자도 디지털 로그아웃을 실천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마지막 한경에세이를 컴퓨터 자판이 아니라 연필로 써 내려가고 있다. 사각사각 연필 소리도 정겹고, 키보드의 Delete 버튼만큼 편하진 않지만 고무지우개의 손맛도 참 좋다. 신기하게도 불현듯 한동안 잊고 지내던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은사가 생각나고, 대학 시절 즐겨 듣던 LP판도 다시 한번 꺼내 보고 싶어지면서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지인이 느낀 고속 충전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세계 최대 IT기업 구글의 2대 최고경영자(CEO)였던 에릭 슈밋 회장이 2012년 보스턴대 졸업식 축사에서 “인생은 모니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며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끄라”고 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던 것 같다.

시대가 변한 만큼 한 시간이 아니라 30분을 기준 삼아 앞으로 꾸준히 디지털 로그아웃을 실천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도 부족한 스마트폰 배터리에 불안감을 느끼지 말고 내 몸과 마음을 고속 충전해 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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