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글로벌 화학사 아케마, PI첨단소재 1조에 인수한다

입력 2023-06-28 13:32   수정 2023-06-28 14:05

이 기사는 06월 28일 13:3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폴리이미드(PI) 필름 시장 1위 기업인 PI첨단소재가 글로벌 특수화학 소재 기업인 아케마(ARKEMA)에 팔린다. 경영권을 포함한 거래 가격은 1조원으로 합의됐다.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PI첨단소재의 지분 54.07%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는 이날 PI첨단소재 경영권을 아케마에 매각하기로 하고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보유 지분 전량의 가격은 1조원으로 책정됐다.

PI첨단소재의 전신은 SKC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50대 50 지분율로 2008년 설립한 SKC코오롱PI다. 양 사가 2020년 신사업 진출을 위한 현금확보 차원에서 합작사 지분을 내놓자 글랜우드PE가 약 6070억원에 경영권을 인수해 새 주인에 올랐다.

글랜우드PE는 인수 이후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향 PI필름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PI필름 생산량을 확대하고 모터에 바르는 바니시(varnish) 등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스마트폰향 매출이 대부분이었던 수익 구조도 전기차 모터 및 배터리 다변화하는 데 성공했다.

새 주인에 오른 아케마는 바스프, 다우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화학사로 꼽힌다. 특수 화학 소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아케마가 이번 인수로 그간 생산하지 않았던 PI필름 분야에서 세계 1위 회사로 단번에 오름과 동시에 한국 및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얻었다"고 말했다.
공격적 투자로 매출 다변화한 글랜우드PE
PI첨단소재 주력 제품인 PI는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분류되는 특수 화학소재다. 범용 플라스틱에 비해 내열성과 절연성이 매우 높다. 극한과 초고온에서도 변형이 없다. 영하 269℃부터 400℃까지도 견딘다. 철과 강도가 동일함에도 무게는 10분의 1에 불과하다.

글랜우드PE가 인수하기 전만 하더라도 PI첨단소재가 생산하는 대부분의 필름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연성회로기판(FPCB) 소재에 쓰였다. 스마트폰 관련 매출이 전체의 85%를 차지할 정도였다. 삼성전자 등 국내 모바일 기업들을 전방산업으로 두고 점유율 세계 1위 기업으로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정체가 시작된 점은 고민거리였다.

글랜우드PE는 3년 전 PI첨단소재를 인수하면서 사업 다각화를 과제로 삼았다. 스마트폰에 치중된 매출을 모빌리티로도 분산시키겠다는 목표였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모빌리티 핵심 소재사로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전기차 배터리 절연용 PI 필름과 PI 바니시의 비중을 늘린 건 이 같은 일환이었다. 고온에 강한 PI 필름은 주로 전기차에서 배터리 셀을 감싸는 테이프에 탑재된다. PI 바니시는 PI 필름 원료로 전기를 통하지 않게 하는 성질이 있다. 전기차 모터에 쓰이는 권선 피복에 발라 권선끼리 합선되지 않도록 절연 처리를 해 화재를 방지해준다. 최대 560도의 고열을 견딜 수 있다. 전기차 생산업체들이 최근 바니시를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글랜우드PE는 인수 후 대규모 투자도 이어갔다. 진천 및 구미 공장의 설비 증설에 약 1800억원을 재투자했다. 연간 3900t(톤) 수준이던 PI 필름 생산량을 7150톤까지 늘렸다. 글랜우드PE 인수 이후 진출한 바니시 생산량도 600톤 수준에서 3600톤까지 6배 늘리기로 했다. EV용 신규 PI 바니시 공장인 충북 진천 사업장이 내년 8월 가동을 앞두고 있다.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리면서 매출도 점차 다변화하고 있다. 스마트폰향 매출은 인수 전 85%에서 1분기 기준 51%까지 줄었다. 방열시트(17%) 사업 외에 전기차 등이 속한 첨단산업의 비중은 31%까지 늘었다. 신규 매출처 계약과 양산 시점을 고려해 올해 3분기부터 관련 매출도 크게 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20년 200억원 초반에 그쳤던 전기차향 매출은 올해 약 400억원 이상이 예상된다. 회사는 2020년 10%대 초반이었던 전기차 매출 비중을 올해 20%, 2025년엔 3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실적도 안정세를 보이는 중이다. PI첨단소재는 작년 매출 2764억원, 영업이익 521억원을 기록했다.
아케마 발판삼아 글로벌 고객군 확장
아케마는 2022년에도 PI첨단소재 인수전에 도전했지만 베어링PEA에 밀려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베어링PEA와 막판까지 인수 경쟁을 벌인 유력 후보였다. 하지만 베어링PEA가 SPA 체결 6개월 만에 계약 이행을 거부하면서 다시 인수 기회를 맞게 됐다. 아케마는 글랜우드PE에 적극적으로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아케마는 한국에 모바일 및 디스플레이, 반도체와 2차전지 모빌리티에 이르는 전방산업 핵심 고객사가 다수 포진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 봤다.

매각 측도 아케마가 PI첨단소재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가장 적합한 원매자로 판단했다. 주로 아시아 시장에 판매망을 구축한 PI첨단소재가 유럽과 미국 등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봤다. PI첨단소재의 지역별 매출은 중국(58%), 국내(34%), 기타(8%) 순으로 중국향 매출 비중이 높은 편이다. 전기차 이후 먹거리로 점찍은 우주 항공분야 소재에서 아케마가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다는 점도 매력요인이 됐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PI첨단소재는 국내외 대형 PEF와 중견 대기업들이 인수 의사를 보이며 탐내왔던 매물"이라며 "매각 측이 매각 이후에도 회사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가 아케마라 판단했을 것"이라 평가했다.

이번 거래는 아케마의 각 국 기업결합신고가 마무리되는 내년 3월 종결될 전망이다. 글랜우드PE는 인수 5년여만에 약 3배 가까운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차준호 / 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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