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언어의 시장’에서 경쟁하는 두 개의 말을 지켜보고 있다. ‘처리수 대(對) 오염수’가 그것이다. 이들은 서로 언중(言衆)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세력싸움을 하는 중이다. 어느 쪽이 살아남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두 말에는 이미 정치적 프레임이 씌워져 있기에 ‘언어의 순수성’을 따질 시기는 지났다. 하지만 적어도 말을 들여다보고 판단할 잣대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과학의 언어’와 ‘시적 언어’의 구별이다.
과학의 언어는 엄격하고 정교하며 객관적인 쓰임새를 요구한다. 그에 비해 시적 언어는 수사적 표현이 풍부하고 개인적이며 주관적, 감상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똑같은 대상을 두고 ‘언어의 스펙트럼’에 따라 서로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 국어사전은 어디쯤에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은 ‘과학의 언어’로 말한다. 앞서 살핀 ‘눈’에 대한 풀이가 그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국어사전이 언제나 과학의 언어를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정치적 언어’에 의해 오염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2014년 터진 ‘사랑 파동’은 그런 사례 중 하나다. 그해 국립국어원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J 국회의원은 “(국어원이) 외부 압력과 민원에 굴복해 ‘사랑’ 등에 관한 뜻풀이를 이성애 중심으로 재수정했다”고 비판했다. 발단은 이태 전인 2012년으로 올라간다.
이번에는 보수단체들이 반발했다. 국어원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표현을 썼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일부 종교단체 등을 중심으로 재개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국어원은 2013년 10월 재검토에 들어가 이듬해인 2014년 1월 ‘남녀’ 표현을 되살린 뜻풀이로 다시 고쳤다. 수정과 번복을 거듭한 이 사태는 겉으로는 사전 풀이를 둘러싼 공방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보수-진보를 가르는 뿌리 깊은 사회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요즘 벌어지는 ‘처리수-오염수’ 싸움은 ‘과학의 언어 vs 정치적 언어’ 간 주도권 경쟁이다. 처리수(treated water)는 ‘일정한 결과를 얻기 위해 화학적·물리적 작용을 거친 물’이다. 이것은 과학의 언어다. 이에 비해 오염수(contaminated water)는 ‘후쿠시마 앞 바다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우럭이 잡혔다. 일본이 방류한 핵 폐수 때문’이라는 식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정치적 언어’다. ‘사실의 언어’와 ‘음모론·괴담’을 구별해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 코너를 통해 말과 글을 탐구하고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안 없이 주장만 있을 때 그것을 음모론이라고 부른다. 과학은 없고 정치와 선동만 난무할 때 그것은 괴담으로 빠진다. 이도 저도 싫다면 과학과 정치의 중간쯤에 ‘방류수’(가두어 놓은 것을 터놓아 흘려보내는 물)가 있다. 이 말은 가치중립적 표현이라 비교적 객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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