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세 늦깍이 테너, 차이콥스키 1위 "마지막이라 더 절실했죠"

입력 2023-06-30 16:56   수정 2023-07-01 16:52

테너 손지훈이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홈페이지
"제가 만 나이로 32세인데 차이콥스키 콩쿠르 지원이 딱 만 32세까지 가능해요. 마지막 기회인만큼 더욱 절실하게 노래했습니다. "

올해 차이콥스키 콩쿠르 남성 성악 부문 1위를 차지한 테너 손지훈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손지훈은 29일(현지 시간) 폐막한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러시아 출신 지나이다 차렌코와 함께 성악 부문 공동 1위를 차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손지훈은 2019년 9월 독일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뮌헨국립음대 마스터(석사) 과정을 졸업한 뒤 유럽을 돌며 여러 국제 콩쿠르에 도전해왔다. 지난 5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선 준결선까지 올랐다.

그는 성인이 돼 노래를 시작한 '늦깍이 테너'다. 일반 대학에 다니던 스무살 가을, 그는 다니던 교회 성가대 지휘자의 권유로 성악을 시작했다.

"어느날 교회 지휘자님이 저에게 '목소리가 좋으니까 취미 삼아 레슨 한번 받아보라'고 권유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그렇게 찾아간 성악 선생님이 '너는 100년에 많이 나올까말까 한 테너가 분명하다. 반드시 성악을 해야 한다'며 권했습니다. 조금 '오버'를 하신건데, 그걸 믿고 따라갔죠(웃음)."

1년간 음대 입시를 준비한 그는 이듬해인 2010년 한예종에 합격했다. 늦게 시작한 탓에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진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유럽으로 넘어간 뒤엔 더욱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고자 노력했다.

"제가 테너 중에서도 고음을 주로 내는 '레제로 테너'라는 걸 알고, 그쪽 레퍼토리로 대폭 수정했어요. 저는 동양인이다보니 차별화도 필요했죠. 이를테면 라보엠의 '로돌포'처럼 서양 테너들이 많이 하는 레퍼토리보다 벨칸토 창법이 두드러지는 로시니의 작품을 많이 공부했어요."

레제로 테너는 테너 중에서도 가장 고음을 많이 내야하는 테너다. 이들은 테너의 최고음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레’나 ‘파’까지 구사하기도 한다. 고음과 저음을 빠른 속도로 오가며 콜로라투라적 기교를 구사한다. 고난이도 작품을 주로 부르는 테너인 만큼 목 관리도 쉽지 않았다. 손지훈 역시 어떨 때는 리허설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세심하게 관리했다.

"제가 이번 콩쿠르에서 가장 많이 부른 로시니의 작품은 스케일이 많고 기교적으로 어렵습니다. 조금만 무대 위에서 밸런스가 깨져도 티가 많이 나요. 그래서 더욱 목 관리에 신경쓰는 편입니다. 소프라노인 저의 아내도 항상 무리하게 지르지 말고, 오래 부를 수 있도록 적절히 조절하라고 조언해줘요. 그게 똑똑한 방식이라고 생각하죠. "

테너 손지훈 프로필. 한국예술종합학교 제공
그는 매년 4~5개의 국제 콩쿠르에 나갔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 카바예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올해는 우승은 못했지만 퀸 엘리자베스와 비냐스 국제 성악콩쿠르에 출전했다. 그는 콩쿠르를 준비할 때마다 호텔 방에서 홀로 불안과 고독에 쌓여 지낸다고 말했다.

"외향적인 친구들은 콩쿠르 간 김에 지역 구경도 하고 맛집도 가고 하는데 저는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이라 호텔에만 있어요. 연습하고 남는 시간에는 유튜브를 보거나 혼자 생각하죠. 그러다 종종 불안해지면 악보를 계속 꺼내보기도 하고요. '시간을 태운다'고 표현하는데 저는 콩쿠르 준비할 때 그게 참 힘들었어요."

음악 활동을 후원해주는 재단에 대한 감사함도 전했다. "세아 이운형 재단에서 후원받고
있습니다. 유럽에 살아도 콩쿠르에 나가려면 금전적 부담이 상당한데, 재단에서 지원해주신 덕분에 여지껏 이렇게 마음껏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나아가는 손지훈에게 무대는 삶의 전부가 아니다. 그의 목표는 '무대 아래에서도 박수받는 성악가'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의미다. 무대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일반적인 젊은 아티스트들과는 결이 다르다.

"무대, 정말 중요하죠. 그렇지만 무대 위에 서는 건 삶에서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대단한 성악가여도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성악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무대 위든, 아래든 정말 괜찮은 한명의 인간으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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