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총수가 되면 국내외 계열사 공시 및 자료 제출 의무가 생기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는다. 얼굴도 모르는 먼 친인척의 사업 현황과 보유 지분까지 조사해 신고해야 한다. 자칫 누락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총수가 되는 순간 없던 규제가 옥죄고 갖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이런 사정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성장해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이 되면 67개 규제를 새로 적용받아 총 규제 수가 217개로 늘어난다. 덩치가 커졌다고 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번 공정위 조치로 기준 자체가 개선된 것은 아니다. 시대착오적 총수지정제는 폐지가 마땅하다. 이 제도는 37년 전 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막고, 소수에게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해외 법인 매출 비중이 50%를 넘는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의결권 제한, 다중대표소송 등 대주주 견제 장치도 촘촘하다.
윤석열 정부는 경쟁 제한적 규제 개혁과 함께 합리적인 기업집단 규율을 통한 기업 부담 완화를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공정위가 올해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대기업집단 제도에 대한 개선 계획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자산총액 상향 등 대기업 지정 기준 조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공시대상기업집단 등 글로벌 경쟁 시대에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 자체를 과감하게 철폐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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