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들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 적용해온 소수 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인종차별 완화를 위해 약 60년간 유지돼온 정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돼 미국 사회에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 명문대 입시에서 ‘우세집단’으로 분류돼 역차별을 받아온 한국 등 아시아 학생들의 입학문은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 연방대법원은 29일(현지시간) 이날 비영리단체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소송에서 두 대학의 입학 전형 프로그램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대학들이 인종차별 완화를 위해 1960년대부터 적용해온 ‘어퍼머티브 액션’(적극적인 조치)이 대폭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방대법원은 “대학들이 너무 오랫동안 개인 정체성의 핵심인 도전과 노력, 쌓은 기술, 배운 교훈이 아니라 피부색을 근거로 입학 여부를 판단했다”며 “헌법은 그런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는 정당하고 객관적인 고려 없이 (부정적인 선입견을 포함한) 인종적 요소를 입시에 고려해 평등보호조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결정 과정에서 아시아계 학생을 주축으로 한 SFA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인정된 것으로 풀이된다. SFA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하버드대에 지원한 16만 명의 성적을 분석해 보니 아시아계 학생들이 ‘개인 평점’에서는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버드대가 지원자의 긍정적 성향, 호감도, 용기 등 주관적 평가 항목으로 구성된 개인 평점으로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는 설명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전체의 6%에 불과하지만,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입학생의 20% 이상을 차지해 ‘우세집단’으로 분류된다.
아시아계는 처음엔 소수 집단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 명문대 입학생이 급증하면서 역차별을 받게 되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번 판결로 흑인 학생의 명문대 입학이 급감하고 백인과 아시아 학생의 입학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996년 캘리포니아주가 인종에 따른 대입 우대를 금지한 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와 UC버클리 등에선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의 입학이 50%가량 줄어들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법원이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미국 이념에 반하는 결정으로 소수인종 대학 입학 우대 정책을 사실상 종료시켰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번 결정은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위헌 결정에 찬성한 대법관 6명 중 3명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임명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미국을 위해 훌륭한 날”이라며 “우리는 완전히 능력에 기반을 둔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게 옳은 길”이라고 밝혔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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