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모호한’ 산업안전보건 규칙을 정비하기 위해 수천만원대 연구 용역을 발주했지만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찰을 거듭한 끝에 최근에야 수의계약으로 연구를 맡을 곳이 확정됐지만 업계에선 규칙 정비가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안전보건 규칙은 주무 부처인 고용부뿐 아니라 법률 전문가들도 헷갈릴 정도로 정비가 시급함에도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기준이 되고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유찰이 거듭되자 고용부는 최근 수의계약으로 전용일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연구진에 규칙 정비에 관한 연구 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은 경쟁 입찰이 원칙이지만 2회 이상 유찰되면 수의계약으로 외부에 맡길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특정 기관의 단독 응찰로 연구 용역이 계속 유찰돼 전 교수와 수의계약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지난 3월 ‘산업 안전보건 법령 정비추진반’을 출범했다. 지난해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과제인 ‘위험성 평가 중심의 자기 규율 예방체계’를 널리 구축해 안전보건 법령끼리 충돌하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1990년 7월 23일 제정된 이 법령은 산업 안전보건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기본법으로 여겨진다. 안전보건관리규정, 유해 위험 예방조치, 근로자의 보건관리, 벌칙 등 총 12장으로 구성됐다.
특히 산업안전보건 규칙 제175조가 대표적이다. 이 규칙은 ‘사업주는 차량계 하역운반기계 등을 화물의 적재·하역 등 주된 용도에만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이렇다 보니 ‘등’에 해당하는 주된 용도를 두고 현장에선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노동팀 변호사는 “이 같은 규정으론 어떤 장치까지 법령상 허용되는 것인지 불분명하고 사업주가 처벌받은 사례도 있다 보니 불안해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모호한 법령을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행법은 사업주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어 현장의 혼란이 크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고의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고의범 사안임에도 실제로는 사실상 과실범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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