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건희 땅이든 김건희 땅이든 도로만 깔리면 돼요. 이게 무슨 난리인지 원….”(양평군민 김모씨)
고속도로 백지화라는 ‘청천벽력’을 맞은 경기 양평군 일대는 7일 종일 어수선했다. 군청엔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공무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군청과 군의회, 지역 시민단체들이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어 결의문을 내거나 규탄 모임을 가졌다. 바르게살기운동본부, 청년단체, 보훈단체 등 16개 지역시민단체 회원 150여 명은 대책회의를 했다.
군민들은 교통체증이 심한 주변 도로 때문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정치적인 갈등이 생겼다고 해서 지역에 이렇게 피해를 주는 게 어딨냐고 정치인들을 원망하는 분위기였다.
정치적으로 시끄러운 것과 달리 현지 주민들에게는 종점이 어디냐는 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닌 분위기였다. 양평군은 기존 국토부에 제시한 1안이 예비타당성 통과를 위한 최초 안이었고, 환경영향평가 결과 등에 따라 2안으로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평군으로선 논란이 된 ‘종점 변경’(1안 양서면, 2안 강상면)보다는 군 내부에 나들목이 생기느냐 마느냐가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안철영 군 도시건설국장은 “1안은 고속도로 간을 잇는 중앙선 철도와 가까운 데다 상수원 규제 때문에 나들목을 새로 만들기 어려웠다”고 했다.
1안에 비해 2안이 생태지와 상수원 보호구역 등의 훼손이 적다는 장점이 크고 국토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노선이 바뀌었다는 게 군청의 설명이다.
전진선 양평군수는 “강하면에 나들목을 만들면 군 내 균형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며 “일부 지역은 뛰어난 풍광으로 예술인이 모여 살고, 갤러리가 들어서기도 했는데 이런 곳을 활용해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고 ‘예술인 거리’도 만들 생각이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갑자기 정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한 주민은 “노선 변경 이후 강상면 병산리 김건희 여사 선산 주변이라는 곳에 가볼 일이 있었는데, 악산(岳山)도 그런 악산이 없다”며 땅값 상승을 기대할 만한 곳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날 양평군의회 의원 7명 중 5명은 ‘사업 백지화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백지화 선언은 군민을 경악하게 했다”며 “특정 정당이 군민 염원을 헤아리지 못한 잘못된 선택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국토부를 향해 “당장 사업을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전 군수는 이날 국토부에 원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국회의원들도 잇달아 만나서 성난 지역 민심을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에 “서울~양평고속도로는 12만 양평군민의 오랜 염원”이라며 “민주당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김 여사 프레임을 씌워 사업을 좌초시킨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고속도로 백지화로 이 지역에서 분양사업을 하려던 건설사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고속도로 예비타당성 조사가 통과된 2021년 호재에 힘입어 아파트 공급이 적지 않았다”며 “‘송파 20분’이라는 광고를 내걸며 홍보했는데 다 거짓말이 되게 생겼다”고 답답해했다.
양평=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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