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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책은 여름이 단연 제철이다. 앉은 자리에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독서는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피서다. 휴가지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책을 챙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여행업계뿐 아니라 출판계에도 여름은 '성수기'다. 출판사들은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그 해의 기대작을 출간한다.
올 여름휴가에는 어떤 책을 '반려책'으로 삼아볼까. 한국경제신문의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 '아르떼'에 책 추천 칼럼 '탐나는 책'을 싣고 있는 국내 대표 출판사 편집자 12명에게 여름휴가지 추천도서를 2권씩 부탁했다. 일부 '다득표' 책 포함 총 22권의 '제철' 책을 정리했다.
◇여름엔 스릴러소설이 제격
여름에 어울리는 책으로는 역시 등골 서늘한 스릴러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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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세계적 권위의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는 이번 책 추천에서 2표를 얻은 2권 중 하나다. 이 책은 판타지·호러 단편소설 10편을 담고 있다. 저주와 복수, 유령 같은 비현실적 소재로 현실 사회의 비이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우화 소설이다.
글항아리 출신 독립 편집자인 박은아 씨는 이 책을 추천하며 "장마와 열대야, 천둥 번개와 음산함이 있는 여름의 얼굴은 극단적"이라며 "악천후가 지나고 맑게 갠 하늘이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모르겠는 기분이 들 때는 우중충하게 휘몰아치는 소설집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인플루엔셜의 한국문학 브랜드 래빗홀을 담당하는 최지인 팀장도 이 책을 자신 있게 추천하며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무서운 이야기처럼 저주 인형과 화장실 귀신, 여우 요괴 등 오싹한 재미를 한가득 풀어놓는다"며 "동시에 결코 가볍지 않은 현실의 부조리와 고통에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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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도 무더위를 씻어줄 만한 책이다. 강화길 등 젊은 소설가 8명이 도시괴담을 테마로 쓴 소설을 묶었다.
백다흠 은행나무 문예지 '악스트' 편집장은 "이미 세상은 괴담에 가깝게 변해버려서 그 괴담들을 느끼지 못하는 중"이라며 "여름휴가란 그간 일하느라 놓쳐버린 괴담을 읽고 '그래, 세상은 무서운 거야. 그런 세상을 이렇게 열심히 살아오다니' 하며 내가 대견스러운 걸 깨닫는 시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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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을 모아둔 소설집은 휴가지에서 읽기에 안성맞춤인 형식"이라는 게 박선우 마음산책 편집2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김혜진의 소설집 <완벽한 케이크의 맛>을 추천하며 "스스로를 깊이 들어가며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이야기들"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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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편집장이 함께 추천한 장편소설 <트러스트>는 스릴러를 표방하지 않았지만 서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미국 퓰리처상 소설부문을 받은 이 작품은 20세기 초반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돈의 속성을 탐구한다.
백 편집장은 "겉모습은 미국 대공황 전의 '돈'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내부는 어느 부부의 '트러스트(신뢰)'의 근본적인 사실 확인을 다루고 있다"며 "돈의 성질은 절대로 불변이지만, 그 성질을 지키기 위해 위악과 허상을 이용하는지를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시집
작고 가벼운 시집은 휴가지 가방에 챙기기에 부담이 없다. 그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황인찬 시인이 최근 출간한 신간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는 편집자 2명의 추천 책에 공통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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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 팀장은 이 시집을 추천하며 "낯선 풍광 속에서 읽은 시 한 편은 당시의 기억과 함께 오래 마음속에 담긴다"며 "산산한 아름다움이 깃든 황인찬의 시는 그 어떤 여름 이미지와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휘 난다 편집자는 "시간여행은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도 끝내 갈 수 없는 여행"이라며 "어떤 시는 ‘그곳’이 아닌 어딘가, ‘그때’가 아닌 언젠가, 다만 그때 그곳의 ‘마음’으로 나를 데려다놓는다"고 이 시집을 추천한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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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문학동네 편집자는 백은선의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을 추천하며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해주면 안 돼요?' 같은, 시집 속 솔직하고 정직한 표현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며 "땀이 눈물처럼 맺히는 여름, 몸도 마음도 푹 절어버려, 시원하게 직진하는 시가 필요하다면 백은선의 시가 즉효"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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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책 2권을 모두 시집으로 꼽은 김동휘 편집자가 택한 또 하나의 시집은 안희연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다. 김 편집자는 추천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마구 자라나는 식물들과 찌는 더위, 끈적한 습도, 어쩌면 여름이 품은 ‘적의’를 견디기 위해 우리는 바다로 숲으로 떠난다. 이 난폭한 더위의 한가운데로, 태양의 한복판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던 여름을 우리는 ‘휴가’의 계절로 기억할 것이다. 슬픔의 언덕으로 뚜벅뚜벅 올라 잎처럼 가지처럼 실컷 흔들린 후에, 비로소 “이제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어떤 시인처럼."
◇묵직한 인문서 VS 가벼운 만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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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날아오는 각종 메신저와 메일 알람을 꺼두듯 복잡한 생각은 차단해버리고 싶다면 만화책만 한 게 없다.
이 편집자가 시집과 함께 추천한 <성질 나쁜 고양이>는 일본 대표 만화가 야마다 무라사키가 여성으로서 자신이 느꼈던 진솔한 감정들을 고양이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만화책이다. 이 편집자는 "푹푹 찌는 여름에는 역시 수박과 선풍기, 햇빛 그리고 고양이 만화"라며 "하지만 시를 읽듯 고양이들의 심오한 내면의 풍경들을 찬찬히 건너가다보면 깨닫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읽고 익히고 있는 자신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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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현 민음사 편집자는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책 <산책>을 추천하며 "휴가에 책을 가져갔다가 한 번도 펼치지 않고 그대로 돌아온 일이 벌써 여러 번이지만 만화라면 다를 것"이라며 "매일 걷던 동네에서 새로운 장면을 목격하는 <산책>의 산책자를 통해서라면 여행길 역시 보다 자세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휴가는 평소 미처 도전하지 못했던 묵직한 인문서에 등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김현주 문학과지성사 편집2부 편집장은 이번 여름휴가에 비자이 프라샤드의 <갈색의 세계사>를 읽기를 권했다. 제3세계의 눈으로 본 20세기 현대사를 다룬 508쪽짜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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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3세계’의 정치사라니,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냐고 물을지도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희망과 열망으로 가득했던 제3세계 프로젝트의 흥망성쇠를 살펴보고 그 기억을 발굴해내는 일은 그 어떤 대안도 떠올리기 어려운 오늘날 새로운 정치 기획을 만들어내는 데 꼭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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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아 편집자가 추천한 페르난다 멜초르의 소설 <태풍의 계절>은 픽션이지만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과학서적에 가깝다. 멕시코의 실제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폭력과 빈곤의 문제를 고발한다.
박 편집자는 "을유문화사 암실문고로 소개된 한국어판 책 소개에 편집자가 '텍스트의 압력'이라는 말을 썼는데, 읽다 보면 정말 문득 그것에 짓눌릴 때가 있다"며 "빈곤과 폭력의 도시에서 소명될 수 없는 각자의 진심과 사정이 분노와 재앙이 되어 소용돌이를 일으킨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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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 세종서적 편집주간은 휴버트 드레이퍼스 등이 함께 쓴 <모든 것은 빛난다>을 읽어보기를 권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시작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등 빛나는 서양고전을 다시 읽어가며 서양 철학과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키워드는 #여름 #여행 #휴식
여름과 여행, 휴식을 키워드로 삼은 책도 눈에 띈다. 김현주 편집장은 서양사학자 장문석의 <토리노 멜랑콜리>를 추천하며 "자동차 기업 피아트의 도시, 반파시즘의 도시 토리노가 어떻게 멜랑콜리에 휩싸인 도시가 됐는지를 유려한 필치로 서술하는 책"이라며 "한 도시의 굴곡진 20세기를 담은 이 책을 일종의 도시 가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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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현 편집자는 소설가 박솔뫼·연구자 안은별·소설가 이상우가 함께 쓴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을 추천 책 중 하나로 꼽았다. 세 작가이자 세 친구가 각각 서울, 도쿄, 베를린에서 같은 기간 동안 각자 쓴 글을 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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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편집자는 "여행지에서 읽기 좋은 책으로 이 책을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수도 없다"며 "순서에 관계 없이 어디부터 펼쳐도 읽는 데 무리가 없다는 점, 읽는 행위만으로도 이상하고 든든한 친밀감으로 마음이 채워진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교차하는 필자들의 글들이 여행 그 자체를 닮아 있다는 점 등이 그 이유"라고 했다.
책을 통해 비현실적 공간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볼 수도 있다. 최지인 팀장이 추천한 이소영의 소설 <알래스카 한의원>가 그런 경우다. 주인공 이지는 어느 날 가벼운 교통사고를 겪은 뒤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끼자 치료를 위해 알래스카의 작은 한의원을 찾아간다. 최 팀장은 "이게 무슨 이야기지, 라고 의문을 갖기도 전에 매력적인 인물들에 빠져든다"며 "모든 단서들이 회수되며 그녀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묵직한 감동이 함께 찾아오는 몰입도 높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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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은 일상을 여행으로 만든다. 강영특 김영사 편집자는 새를 관찰하는 활동, '탐조'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책을 추천했다. 팀 버케드가 쓴 <새의 감각>이다. 강 편집자는 "영국의 동물학자인 저자가 펼쳐보이는 새들의 신기한 능력, 살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그저 감탄하게 된다"며 "글도 정말 재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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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사람 여행'을 떠나볼 수도 있겠다. 서효인 안온북스 대표는 정성은의 대화 산문집 <궁금한 건 당신>을 추천했다. 프리랜서 영상 제작자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그리고 지금은 신인 작가가 된 정성은은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엉뚱한 질문을 던져 특별한 대화를 만들어낸다. 서 대표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 지칠 때쯤, 타인의 범상치 않은 인생기를 듣다 보면, 내 인생의 특별함마저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휴가의 세계에 규칙이 있다면 제1번 규칙은 '휴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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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편집자가 추천한 개빈 프레터피니의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는 '멍 때리기'를 위한 준비운동이다. 각양각색 구름을 다룬 이 책의 부제는 '신기하고 매혹적인 구름의 세계'. 강 편집자는 "시름을 잊고 시간을 보내기엔 구름 보기만 한 게 없다"며 "이름도 고상한 '구름감상협회'를 만든 저자의 진한 애정이 느껴지는 사랑스런 책"이라고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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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언 시인이 쓴 <덕후 일기>는 휴식과 열정 사이를 오간다. 이 책은 시인이 쓴 시간을 죽이는 방법이다. '몬스터 헌터'에서 '멜보르 아이들' 같은 온갖 게임에서부터 건담 시리즈를 위시한 애니메이션, 거기에 '의천도룡기'와 '나 홀로 집에'에 이르기까지. 그가 시간을 죽이는 방법은 다채롭다. 이 책을 추천한 서 대표는 "무용한 것을 위한 노력이 내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다"는 책의 문장을 인용하며 "그건 여름을 지내는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휴가 이후를 준비해볼까
평소 생활습관이나 일하는 태도를 돌아볼 수 있는 책들도 추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현대인의 집중력 부족 문제를 실리콘밸리 등 각계각층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헤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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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경 어크로스 편집장은 "상반기 내내 탈탈 털리면서 일한 직장인에게, 휴가는 빼앗긴 집중력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라며 "하지만 ‘충전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며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으면, 당신의 집중력은 영영 가출해버릴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이 바람직한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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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의 건강 수업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도 함께 추천했다. 최 편집장은 "'올해는 건강에 신경 좀 써야지'라던 연초의 다짐이 무너진 지 오래일 것"이라며 "휴가를 한껏 방탕하게 즐기고, 복귀 후에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으로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련해 하반기를 버틸 힘을 만들어보시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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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 복귀하면 그간 미뤄뒀던 업무 회의, 발표, 보고 자리가 카드 고지서처럼 날라들지 모른다. 휴가모드에 들어갔던 뇌를 다시 깨워 적확한 정보를 출력해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말 잘하는 법'이다.
정소연 편집주간은 정연주의 <말을 잘한다는 것>을 추천하며 "사실 누구에게나 공적인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책은 두려움 없애기부터 말실수 피하는 법까지 담은 말하기의 정석"이라고 설명했다.
구은서/임근호/안시욱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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