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원천기술 없으면 공정기술 혁신으로 [사설]

입력 2023-07-11 17:43   수정 2023-07-12 10:32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은 뒤 1024개의 구멍(데이터 통로)을 뚫어 연결하는 공정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올해 4월 세계 최초로 12단 적층 HBM3 신제품을 개발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AMD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 말 HBM3 양산에 들어가는 삼성전자는 수천억원을 투자해 내년까지 HBM 생산 능력을 두 배로 확장하기로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버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들어가는 HBM은 수요 위축에 공급 과잉이 겹친 일반 D램과 달리 AI 혁명을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발(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상반기 메모리 부문에서 약 15조원의 적자를 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새로운 캐시카우인 세계 HBM 시장의 약 90%를 선점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SK하이닉스는 이와 별도로 애플의 요구에 맞춰 차세대 증강현실(AR) 기기 ‘비전 프로’에 들어가는 특수 D램을 처음으로 공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세계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시장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공정기술 경쟁력을 앞세워 질주 중이다. 최근 노바티스와 맺은 5111억원 규모 계약을 포함해 올해에만 2조3000억원의 누적 수주 실적을 거뒀다. 연간 생산능력(60만4000L) 1위, 업계 평균의 절반(3개월)에 불과한 고객사 생산기술 이전 기간, 98%에 달하는 생산 성공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세계 1위를 굳혔다. 글로벌 톱20 제약사 중 삼성의 고객사는 13곳이나 된다.

우리는 반도체 설계, 신약 개발 등과 같은 원천기술 경쟁력에서 글로벌 선두 기업에 뒤처져 있는 게 사실이다.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별개로 공정기술을 고도화해 선점한 시장을 지키고, 신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경기 사이클에 의존하는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세계 1위를 질주하는 대만의 TSMC는 이런 전략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HBM과 바이오의약품 CMO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선전은 원천기술이 부족한 국가와 기업의 성장 전략이 어때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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