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원유 가격은 쿼터제(할당제)와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따라 결정된다. 2002년 도입된 쿼터제에 따라 유업체들은 할당 범위에서 낙농가가 생산한 원유를 전량 정상 가격에 매입해야 한다.
낙농가는 수요가 어느 정도이든 할당된 쿼터만큼을 제값 받고 팔 수 있다. 유업체들은 수지가 안 맞아도 농가가 생산한 물량을 떠안아야 한다.
한 해 원유 쿼터는 220만t에 달한다. 지난해 낙농가가 생산한 양(205만t)보다도 더 많다. 반면 국내산 원유로 만드는 마시는 우유(음용유) 소비량은 170만~175만t에 불과하다. 그 결과 유업체들은 매년 남아도는 원유를 반강제로 사들이고,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며 분유로 만들고 있다.
가격 결정 방식 역시 생산자(낙농가)에 치우쳐 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2013년부터 운영되던 생산비연동제를 일부 개선한 것으로 올해 처음으로 도입됐다. 원유를 용도에 따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눠 다른 가격을 적용하고, 가격 협상 범위를 수급 상황에 따라 정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하지만 수요가 줄었다고 해서 제도에 규정된 대로 원유 가격을 낮출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란 반응이 지배적이다. 가격 협상의 주체는 낙농가와 유업계지만 실질적으론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게 현실이어서다. 정부가 정치적 부담 때문에 낙농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마당에 수요가 감소했다고 그에 맞춰 가격을 낮추긴 어렵다는 것이 유업계의 생각이다.
이는 유럽 등 낙농 선진국의 실상과는 정반대다. 한때 지방정부 차원에서 원유 가격을 통제했던 이탈리아는 1993년 시장 가격 자율화로 정책을 전환한 뒤 20년 만에 낙농업 수출량이 6배가량 늘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시장에 맡기고, 생산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성식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명예교수는 “대체유까지 등장했는데 한국만 아직도 농가 보호에 치우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며 “이대로면 농가와 유업체 모두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원유 가격 결정 체계는 보다 시장 중심적으로 개편하고 생산은 규모화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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