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점심시간에 찾은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싼리툰. 서울의 이태원처럼 젊은 층과 외국인으로 붐비던 지역이지만 이날은 한산했다. 거리엔 배달음식을 나르는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라이더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평소 점심시간에 자리를 잡기 어려운 스타벅스 매장도 빈 테이블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 만난 직장인 쉬번롄 씨는 “예전에는 11시30분에 가도 줄을 서야 했던 식당들이 요즘엔 12시에 가도 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들른 SKP백화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명품 매장이 집결해 있는 이 백화점은 코로나19 방역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에도 명품 쇼핑을 하는 부유층이 줄을 서던 곳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에르메스 매장 직원 주샤오 씨는 “부자들도 돈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기자가 최근 몇 달 동안 항저우(저장성), 시안(산시성), 하얼빈(헤이룽장성) 등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성도급 도시들을 방문했을 때도 경제 활력이 둔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대 도심인 기차역 부근 아파트 단지 곳곳에 빈집이 있었고, ‘임대 구함’ 팻말을 붙여 놓은 사무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지난 3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로 ‘5% 안팎’을 제시했을 때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일각에선 ‘제로 코로나’ 해제만으로 6~7% 성장이 가능한데도 중국이 목표치를 낮게 잡았다고 분석했고, 다른 한편에선 5%도 쉽지 않은 현실적인 목표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최근 경제 지표들을 보면 후자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
중국의 올 상반기 성장률은 5.5%다. 3분기와 4분기에 4.5% 내외의 성장세를 유지하면 연간 5%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과 인프라 투자, 내수 소비, 수출 등 주요 성장동력이 모두 부진에 빠진 상황이어서 하반기에 4%대 성장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전날 발표한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6.3%로 시장 예상(7.3%)을 크게 밑돌았다. 전분기 대비 성장률은 0.8%에 그쳤다. 제로 코로나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0%대 성장률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중국 당국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 대응해 내수 소비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경제 주체의 자신감 약화로 내수 소비는 부진에 빠졌다. 이런 정책 엇박자는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에선 민간기업의 기를 살린다며 간담회를 열면서 다른 한편에선 기업 정보를 국유화하고 인수합병(M&A)을 제한하면서 손발을 묶는 식이다. 외국 기업을 환영한다면서 반간첩법을 강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만난 부자들은 좀 친해지면 하나같이 한국에 투자할 만한 데 없냐고 묻는다. 재산을 해외로 옮길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 중국인 사업가는 “현재 중국의 30~50대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침체로 자산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아지면 해외 도피가 늘어나고, 이것이 중국 경기를 더 악화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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