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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수가는 일반적인 재화·서비스 가격과 달리 정부가 정한다. 항생제 주사는 1만원, 소독약 처방은 5000원 하는 식으로 정해진다. 의료수가 제도는 일종의 가격상한제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환자를 잘 보는 의사도, 명성이 자자한 병원도 의료수가를 초과하는 돈을 받을 수 없다.
정부가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근거는 간단하다. 의료 서비스는 전 국민에게 필요할 뿐만 아니라 판매자(의사)와 구매자(환자) 간 정보 비대칭이 크다는 것이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요즘 환절기라 감기 환자가 몰려서 진료비가 올랐다”며 10만원을 내라고 한다면 어떨까.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의료수가로 감기 진료비를 묶어 놓는다.
의료 서비스의 시장 균형 가격을 추정하기는 어렵다. 여러 연구와 통계를 보면 의료수가의 원가 보전율은 평균 50~80% 수준이다. 필수 의료의 원가 보전율은 더 낮다고 의료계는 주장한다. 소아청소년과는 원가 보전율이 30%대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니 필수 의료는 환자를 보면 볼수록 적자가 난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연간 적자가 600억~800억원에 이른다. 국립암센터와 건보공단 일산병원은 응급실 운영에서만 매년 20억원이 넘는 적자가 난다.
이러니 병원들은 적자투성이 ‘내외산소’ 과목을 구조조정하고 응급실 문을 닫고 있다. 의대생은 필수 의료 과목을 외면하고 성형 등 인기과로 몰린다. 인기과로 가면 의료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로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고, 업무 강도는 낮기 때문이다. 의료 사고로 처벌받을 위험이 적다는 장점도 있다. 지난해 필수 의료 전공의 충원율은 78.5%에 그쳤다. 새 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니 기존 인력은 더욱 격무에 시달린다. 대도시 중심가 신축 빌딩은 피부과 성형외과로 가득 차고, 응급 환자를 실은 구급차는 갈 곳이 없어 길을 헤매는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다.
필수 의료 공백의 대책으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이 종종 거론된다. 그러나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늘어난 의사들이 필수 의료로 갈지는 미지수다. 의사가 많아져 인기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필수 의료를 지원하는 의사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나 기대할 수 있는 결과다.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의료 서비스를 시장 원리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또 의료수가 인상은 건보 재정 악화와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료수가가 문제의 전부도 아니다. 그러나 시장 원리를 도외시한 채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필수 의료 붕괴의 해결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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