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하반기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서울 아파트의 57.5%가 역전세 위험에 놓여 있다. 동작구가 역전세 비율이 72%로 가장 높다. 이어 은평구(67%), 강남구(65%), 서대문구(64%), 영등포구·광진구(63%) 등의 순이다. 경기(61.2%)와 인천(77.2%)은 서울보다 역전세난이 더 심각할 전망이다. 과천시(93%)와 인천 부평구(87%), 양주시(86%) 등이 특히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2년 전 전셋값이 급등했는데, 작년부터 대폭 빠졌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시행 이후 집주인이 전세를 올리기 시작해 2021년 말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고금리와 경기 침체 여파로 작년부턴 뚝뚝 하락하기 시작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5월이 돼서야 하락세를 멈췄고, 지방은 여전히 하락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도 터지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임차인이 제때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규모는 1조8525억원으로, 작년 연간 사고금액(1조1726억원)을 크게 웃돌고 있다. 이에 정부는 27일부터 역전세 관련 전세보증금 반환대출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다.
신규 보증금이 기존 보증금보다 낮거나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임대인이 대상이다. 이들에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가 아니라 총부채상환비율(DTI) 60% 규제가 적용된다. 연소득이 1억원인 다주택자의 대출(금리 연 4%, 만기 30년 기준) 한도는 7억원에서 10억5000만원으로 3억5000만원 늘어나게 된다.
다만 반등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5월 넷째주부터 오르고 있다. 수도권 전체 전셋값도 지난달 마지막 주부터 상승 중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대출금리가 내려가면서 월세 수요가 전세로 돌아섰고, 매매가격이 오르면서 전세 매물이 전반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라며 “올해 초까지 전셋값이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만큼 서울 강남권에서도 입주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사기 우려와 높은 전세대출 금리 등으로 올해 초 월세 선호 현상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전세비용은 낮아지는데 월세비용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전세자금대출 평균 금리는 올해 1월 연 4.96%에서 5월 연 4.09%까지 떨어졌다. 반면 전국 아파트 전·월세전환율은 1월 5.1%에서 5월 5.4%로 오히려 오르는 중이다. 아파트는 다세대·연립주택에 비해 전세사기나 깡통전세 위험도 덜한 편이다.
실제로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회복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 20층대 전셋값은 지난 1월 8억7000만원에서 이달 10억5000만원으로 1억8000만원 올랐다. 3375가구 규모의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전용 84㎡도 올해 1월엔 9억원대에서 전세 계약이 체결됐지만 지난달엔 14억원까지 올랐다.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아직 전셋값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만약 빌라에 거주해야 하는 임차인이라면 전세보다 월세가 안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파트에 비해 시세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빌라는 깡통전세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신축 빌라일수록 위험도가 높을 수 있다. 다만 집주인이 전세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월세 매물 자체가 많지 않을 수 있다. 전세보증금을 줄이는 대신 월세를 더 내는 식으로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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