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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당(後唐) 시대 30년 넘는 세월 동안 11명의 임금을 모셨다는 정치가 풍도(馮道)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입은 재앙을 여는 문이고,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뜻이다. 말조심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굳이 천년을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Think before you speak(생각하고 말하라)’ 등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속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차고 넘친다.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20년 넘게 오작동해온 실업급여 제도를 바로잡겠다고 발표하는 자리에서 ‘시럽(syrup)급여’도 모자라 ‘샤넬 선글라스’라니.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민·당·정 공청회에서다. 박대출 정책위원회 의장은 실업급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업급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고용노동청 직원은 “여성, 청년들은 해외여행 가고 샤넬 선글라스를 사며 즐기고 있다”고 했다. 때를 놓칠세라 더불어민주당은 “인간에 대한 예의, 오만과 폭력”을 거론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1995년 도입된 실업급여 체계는 실직 전 18개월 중 12개월을 근로하면 30~210일간 평균임금의 50%를 지급하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실직 전 12개월 중 6개월만 근로해도 60~210일 동안 주는 것으로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실업자가 쏟아지는 마당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극복 이후에도 실업급여 지급 요건과 수급 기간은 그대로 방치됐고, 2019년에는 수급 기간을 120~270일로 늘리고 지급액도 평균임금의 60%로 올리면서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80%로 정했다. 이미 2017~2018년 두 해에 걸쳐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오른 상황이다 보니 일해서 최저임금을 받으나, 놀면서 실업급여를 받으나 다를 바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게 이때부터다. 청년들을 탓하기 전에 구직자 입장에서는 우량기업 취업을 못 할 바에야 최저임금 언저리 임금을 주는 곳에 취업하기보다는 180일 근로를 채우고 120일 동안 실업급여를 받는 게 당연한 선택이 돼버린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이런 ‘노력’ 덕에 국내 전체 근로자 10명 중 3명 이상은 1년 미만 근속계약 근로자로 채워졌다. 초단기 계약 근로자를 양산하는 실업급여와 연차 26일, 이 두 개의 망가진 수레바퀴를 손보지 않고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도 요원하다.
백승현 경제부 차장·좋은일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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