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등산을 인생에 비유한다. 오르막 끝엔 반드시 평탄한 길이 나오고, 내리막 다음엔 언덕이 기다리고 있는 게,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가 등산을 인생에 빗대 노래하고, 또 그렸다.
그런 무대가 지난 26일 강원 평창에서도 펼쳐졌다. 이날 오후 7시30분 알펜시아 야외공연장(뮤직텐트)에서 열린 제20회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개막 공연의 하이라이트 곡은 ‘알프스 교향곡’이었다. 주최 측이 올해 ‘성년’이 된 이 음악제를 관통하는 주제를 ‘자연’으로 잡은 영향이다. 평창음악제는 다음달 5일까지 강원도 곳곳에서 34차례 공연한다.
이날 알펜시아 야외공연장 로비는 서울의 유명 공연만큼 북적였다. 저 멀리 강원지역에서 평일에 열리는 공연인데도 만석이었다. 클래식 불모지였던 평창에 쏟아부은 지난 20년이 ‘헛짓’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은 공연이었다. 첫 무대부터 그랬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 3명이 한 무대에 올랐으니 말이다. 양인모(바이올린)와 양성원(첼로), 윤홍천(피아노)이 함께 등장하자 객석에선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경기필하모닉과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을 선보였다.
세 명의 협연자는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남의 소리를 들으며 균형을 맞춰나갔다. 조곤조곤 대화하다가 갑자기 격렬하게 토론하더니, 어느새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내뱉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막내 양인모는 대선배들과 잘 어우러지는 소리를 내면서도, 순간순간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이었다. 슈트라우스가 알프스를 오르며 받은 영감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을 지휘자 최수열이 이끄는 경기필하모닉이 음악으로 풀어냈다.
악장 구분 없는 교향시 형태지만 22개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밤-일출-등산-숲속으로-폭포-꽃밭-빙판 위에서-위험한 순간들-정상-뇌우와 폭풍우-하산-일몰-밤’ 등 산행 과정을 음악으로 세밀하게 묘사한 게 특징이다.
풀 오케스트라에 쓰이는 4관 편성, 다채로운 타악기 등 대규모 편성으로 광활한 알프스산맥을 표현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리듬에 시각적이고, 웅장한 규모가 더해져 이른바 ‘곡빨’이 좋은 클래식으로 꼽힌다. 경기필은 대자연의 경이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극적으로 소화해냈다. 최수열은 악단이 가진 소리의 한계치를 끌어내며 약 50분 동안 900여 명의 관객을 알프스로 데려갔다.
곡은 밤으로 시작해 밤으로 끝나는 수미상관 형태로, 등산과 하산 과정을 음악으로 그렸다. 등산을 시작하기 전 밤은 들릴 듯 말 듯한 바이올린 소리로, 한순간에 세상을 밝히는 일출의 모습은 ‘쨍’한 심벌즈, 팀파니 등 타악기로 표현했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순간은 네 대의 트롬본으로 테마를 제시하고, 오보에가 서정적인 멜로디를 더하는 방식으로 ‘지금이 이 곡의 클라이맥스’란 걸 알렸다.
현악 파트의 펼침화음 음형은 숲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그려냈고 ‘카우벨’(알프스 지방에서 소의 목에 달던 벨과 흡사한 타악기)을 사용해 가축들이 거니는 알프스 들판의 목가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바이올린의 피치카토로 표현된 빗방울을 비롯해 피콜로(일반 플루트보다 한 옥타브 높은 작은 플루트), 윈드머신·선더머신(타악기의 일종) 등 생소한 타악기로 천둥·번개와 폭풍우를 표현했다. 후반부에는 오르간이 나서 웅장한 음향효과를 줬다.
평창음악제의 묘미는 독특한 악기만이 아니었다. 연주 중간 오가는 나방과 풀벌레, 비가 그친 뒤 한층 진해진 풀 내음은 연주의 여운을 더해줬다.
평창음악제는 올해 20회 축제를 앞두고 ‘돌부리’에 걸렸었다. “문화예술 지원 혜택을 지역 예술인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김진태 강원지사의 방침에 따라 예산은 전년보다 20% 이상 깎였고, 예술감독도 5년 만에 피아니스트 손열음에서 첼리스트 양성원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실력 있는 음악인이 여럿 무대에 오른 덕분에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창=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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