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크는 지하철역이 없고, 걸어서 2분 거리 ‘미창석유’ 정류장에 66번 버스 1개만 서는 대중교통 불모지다. 그런데도 창 너머 부산항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즐기려는 연인, 지하 전시 공간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전(展)을 관람하려는 미술 애호가들로 에너지가 넘쳐 흘렀다.

부산 영도구는 산업연구원이 새로 개발해 지난해 11월 발표한 ‘K-지방소멸지수’를 적용한 결과 ‘소멸우려지역’으로 꼽힌 곳이다. 전국 50개 소멸우려지역 가운데 광역시 산하 구(區) 단위 기초지방자치단체는 부산 서구, 울산 동구 등 세 곳 밖에 없다.
30일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데이터랩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영도구의 관광소비 액수는 전년동기 대비 18.6% 늘어났다. 이는 부산의 대표 관광지인 해운대구(3.3%)보다 5.6배 높은 수치다. 부산시 전체 평균(11.1%)이나 전국 평균(9.3%)·서울(10.8%)과 비교해도 폭이 훨씬 크다.
지난달 부산 영도를 찾은 관광객 수는 162만명이었다. 같은달 영도구 인구(10만7000명)의 15.1배에 달한다. 지난 2020년 6월 영도를 찾은 관광객이 129만명이었는데 3년 사이 25.6%가 늘어난 것이다. 5년전인 2018년 6월(118만명)과 비교하면 37.3%가 늘었다.

영도는 일제강점기에 국내 최초의 근대적 조선사인 조선중공업주식회사(HJ중공업)가 들어서 조선업과 조선수리업이 번성했다. 1980년엔 인구가 21만3000명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지역 조선 산업 쇠락과 영도 인근 부산시청의 1998년 연산동 이전으로 구도심 상권이 빠르게 몰락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인구는 10만7000명까지 떨어졌다. 인구 감소와 함께 고령화 비율도 치솟았다. 영도구의 고령화 비율은 28.9%로 해운대구(18.5%) 등 부산의 다른 기초지자체보다 훨씬 높다.
무너져가던 지역 경제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무렵부터 지역 기업과 청년 창업가들이 이 지역을 찾아 명소들을 조성하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삼진어묵이 태종로99번길 본사 근처에 지은 복합문화공간 ‘아레아식스’가 대표적이다.
부산 지역기업 삼진어묵은 지난 2021년 본사와 봉래시장 사이 6채의 방치된 빈집이 있던 곳을 도시재생프로그램을 통해 탈바꿈시켰다. 삼진어묵·송월타월·머거본 등 부산 지역 브랜드의 가게와 지역 소상공인들의 가드닝숍·그로서리스토어·코워킹 스페이스 등이 입점해있다. ‘힙’한 공간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으러 온 사람들이 지역 브랜드 제품을 쇼핑하고 바로 옆 전통시장(봉래시장)까지 찾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관광객들이 영도에서 주로 찾는 관광지도 변했다. 한국관광 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태종대, 해양박물관, 영도대교 등 전통적인 관광지에 집중돼있었지만 지난해엔 흰여울문화마을, 피아크, 라발스호텔, 삼진어묵 기념관 등 새로운 곳들이 대거 상위권에 등재됐다.

영도 외 지역에서도 기업 주도하에 낙후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고려제강은 지난 2016년 망미동 와이어 공장 일대를 복합문화공간 ‘F1963’으로 재단장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국제갤러리·금난새뮤직센터·예스24·테라로사 등이 들어섰다. 지난 26일 국제보훈장관회의 참석차 부산을 방문한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가 찾기도 했다.

지난해 문을 연 민락동 ‘밀락더마켓’도 대표 관광지로 부상했다. 이곳 역시 부산 지역 외식업체 키친보리에가 개발했다. 이훈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교수는 “정부나 지자체가 먼저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관광객 유치가 인구소멸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류제학 피아크 대표 인터뷰 "닭장형 건물 대신 랜드마크 지었더니…부산 대표 관광지 돼"
부산=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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