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에서 국내 전력기기 기업인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의 수주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 내 송배전 변압기 교체, 전기차 충전 인프라 설치, 신재생에너지 관련 수요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사 주문이 빗발치며 2025년 생산분까지 입도선매되고 있다. 지난 2분기 미국에서 대규모 수주를 따낸 LS일렉트릭은 현지 공장 건설도 검토 중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은 각각 미국 공장을 100% 이상 가동 중이다.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주말 및 야간 특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현지 고객사는 3년 뒤인 2026년 생산 물량까지 선점하기 위해 선계약을 요청하고 있다.
이 같은 수요 급증 분위기 속에 HD현대일렉트릭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효성중공업은 변압기 차단기 등 전력기기 제품 가격을 2년 만에 20%가량 올렸다.
제품 가격 인상에도 수주는 급증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2분기 미국 시장에서 5억1300만달러(약 6600억원)어치를 수주했다. 지난해 2분기보다 44.9% 증가했다. 이로써 2분기 말 수주잔액은 18억4000만달러(약 2조4000억원)로 불어났다.
효성중공업도 지난 1분기 말 미국 수주잔액이 2억1196만달러로 1년 새 14.6% 늘었다. 이 회사는 2분기 수주액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HD현대일렉트릭과 비슷하게 늘어난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공장만으로 수요 충족이 어려워 이들 기업은 한국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까지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후한 송배전 인프라 교체 시기가 도래한 점이 수주 급증의 가장 큰 요인이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배전 변압기의 70%가 평균 수명인 25년을 넘어섰다. 최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 공사가 잇따르는 점도 전력기기 수요를 키우고 있다. 전기차가 급격히 늘며 가정마다 충전 인프라를 설치하기 위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통상 변압기 리드타임(주문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기간)이 10개월인데, 오래 거래한 고객의 경우 7~8개월로 납기를 단축해 공급한다”며 “신규 고객들도 제품을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기존 고객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각 주에서 변압기에 쓰이는 소모품인 절연물을 친환경 제품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규제가 확산하는 점도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HD현대일렉트릭이 친환경 절연유를 적용해 개발한 변압기나 효성중공업의 친환경 변압기 등이 인기가 높은 이유다.
LS일렉트릭은 그동안 진입이 어려웠던 미국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잇따라 신설하면서 현지에서 이 회사 제품을 쓰게 된 것이다. LS일렉트릭의 2분기 수주액 4500억원 중 미국 시장이 28%를 차지했다. 미국에 공장이 없는 이 회사는 국내에서 제조해 수출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 현지 기업과의 거래는 없지만, 납기가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며 “미국 공장 신설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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