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이후 미국이 위기 극복의 준거 틀로 삼아온 여러 정책 처방 중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1999년 4월 예일대 동문회에서 처음 언급한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에 경제정책의 근간이 되면서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적용됐다.
출발은 1950년부터 1988년 은퇴할 때까지 예일대에서 화폐경제학을 가르친 제임스 토빈이다. 정책적으로는 로버트 솔로, 아서 오쿤, 케네스 애로 등이 1960년대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정부 때 실행된 경제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월리엄 노드하우스, 로버트 실러, 그리고 재닛 옐런(사진 오른쪽)이 뒤를 잇고 있다.
전체적인 기조는 경기부양 등과 같은 단기 과제는 케인지언 이론을 선호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등과 같은 장기 과제는 신고전학파 이론을 받아들여 해결한 독특한 정책 처방 패키지다. 즉, 단기 과제는 총수요와 총공급 곡선으로 이해하고, 장기 과제는 토빈과 솔로 모델을 선택했다.
경제정책은 현안에 따라 유연하게 운용했다. 재정정책은 경기부양과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 건전화가 뒷전으로 물러나는 것을 용인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통제권에 들어오면 국가채무를 줄여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는 쪽으로 우선순위가 이동했다. 통화정책도 ‘준칙(monetary rule)’대로 운용하지는 않았다.
최종 목표인 장기 성장과 완전 고용을 위해서는 물적자본, 인적자본, 연구개발(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강조했다. 정부는 친기업 정책을 추진해 이윤이 높아지도록 하는 데 중점을 맞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세제도 투자세액공제제도를 도입하고 소비세율을 높여 저축과 투자가 함께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토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한 1960년대와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전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토빈 교수가 케네디 정부에 정책 자문한 1961년 이후 106개월 동안 확장 국면이 이어졌다. 1990년대에는 예일대 교수들이 다시 빌 클린턴 정부와 손을 잡으면서 확장 국면이 2001년 3월까지 120개월 동안 지속됐다.
미국 이외 국가에서도 활용됐다. 1990년 이후 ‘엔고(高)의 저주’에 걸려 20년 이상 침체 국면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의 발권력을 통한 엔저 유도 권고를 받아들여 ‘잃어버린 30년’ 우려를 차단하려 했던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인 예다. 하마다는 토빈의 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기부양, 고용 창출, 재정 건전화를 목표로 출발한 조 바이든 정부도 집권 전반기가 끝났다. 3대 목표 중 완전 고용을 달성한 지는 오래됐다. 작년 3분기 이후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2%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채무는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특별 재정지출 요인으로 개선할 틈이 없었다.
바이든(왼쪽) 정부의 집권 후반기 목표는 명확하다. 미진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는 일이다. 케인지언의 총수요 관리이론대로 두 과제를 달성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은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안이다. 하지만 국가채무가 더 늘어나고, 어렵게 잡히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우려가 있어 쉽지 않다.
최근과 상황이 비슷했던 1990년대 후반 클린턴 정부는 전임 조지 부시 정부의 ‘강력한 미국’ 정책으로 늘어난 국가채무를 줄이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페이 고(pay go)’를 추진했다. 소모성 경비인 일반 경직성 세목을 줄여 경기부양 효과가 큰 투자성 세목에 몰아주는 ‘제3의 처방’인 이 정책은 집권 후반기 바이든 정부에서도 추진할 계획이다.
산업정책 면에서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첨단기술산업을 육성해 한편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려 재정 수입을 늘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가안정을 도모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한국 정부도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참고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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