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대부분 영유 출신이라는데…” 영어유치원, 꼭 보내야 할까? [어쩌다 워킹맘]

입력 2023-08-09 09:49   수정 2023-08-09 09:50

미취학 아동들의 사교육 중 끝판왕은 단연 영어유치원이다. 커뮤니티나 맘카페에서 ‘영어유치원’은 늘 핫한 이슈다. 영유아 사교육비의 원흉으로 꼽히며 정부가 칼을 뽑아 들기도 했을 정도니 말이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자 대치동의 적당한(?) 학습식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아들을 키우는 우리 집의 경우, 영어유치원을 보내기로 한 것은 남편의 의지가 컸다. 영어로 논문을 쓰거나 학회에 참석을 하다 보니 언어의 장벽을 많이 느꼈고, 어렸을 때 시작해야 학습이 아닌 언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남편의 의견이었다.

아이가 기관과 규율, 제도의 적응력이 빠르고 인지나 발달도 빠른 아이여서 내심 보낼만하다 싶었다. 주변에서 처음 영유를 갔을 때 거부감을 보인 여러 사례의 얘기를 들었고(매우 낮은 확률이라 생각했지만), 아이가 심각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면 일반 유치원으로 옮기겠다는 각오로 6세였던 4월, 중간에 비어 있는 유치원을 운 좋게 입소했다.

부모의 통제 아래 ‘페퍼피그’, ‘옥토넛’ 같은 영어 만화와 간단한 영어책으로 영어 노출을 시작했던 아이는 다행히 거부감이 없이 적응했다. 오히려 과학실험이나 미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꽉 차 있는 일정을 재밌어 했다.(7세가 되며 라이팅이 늘어나며 약간 힘겨워한 부분은 있었다)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친구들과 함께 6세가 끝날 때 0.5년차를 월반하고, 반에서 가장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당연히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경우, 내 아이에게 과연 영어유치원이 잘 맞을 것인가에 대한 ‘부모의 판단’이 적중했던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영어 사교육이나 영어유치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이 기준들을 고려하면 좋을 것 같다.



아이의 성향
모든 교육의 방향성, 기관을 택할 때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지식이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정도, 규율과 친구들과의 협업 정도를 고려해야 한다. 영유는 언어환경이 바뀔 뿐 더러 어린이집처럼 보육이 중심인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적인 호기심이 많고 영상(은 어차피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뿐 아니라 책을 비롯한 콘텐츠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영유에서 다뤄지는 많은 영어 콘텐츠들을 쏙쏙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교육의 목적
우리의 목적은 영어를 언어로 받아들여서 엄마, 아빠보다는 좀 더 편하게 영어를 읽고, 쓰고, 말하기를 원했다. 사실 영유를 다니면 어느 정도 이 목적은 달성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웃풋(영어 레벨)에 대한 집착과 함께 대치 유명학원을 목표로 하는 영어 레벨테스트나 영어학원이 목표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레벨테스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따로 준비를 하지 않으면 통과가 어려울 만큼 테스트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결국 이 테스트를 위해 아이를 잡거나 영어사교육을 추가로 시키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학원들의 ‘공포 마케팅’에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레벨테스트나 유명 ‘유치원’, ‘학원’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이 더 타이트하게 사교육을 받기 때문에 결과가 더 좋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애초에 우리의 목적은 대치동 톱레벨의 학원, 유치원과 같은 ‘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레벨 테스트에 큰 의의를 두지 않았고(사실 노력했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만큼 과열되어 있으므로) 아이가 영어를 훨씬 더 즐겁게 받아들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경제적 부담의 정도
이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다. 대치동에 있는 영어유치원의 비용은 비슷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져 있는데 기본 150만원가량에 교재값과 활동비 등을 추가로 하면 월 180만원, 방과 후까지 하면 대략 월 240만원 내외의 비용이 든다. (21~22년도 기준이며 지속적으로 상향되고 있다.)

맞벌이에, 아이가 하나인 우리집의 경우 이 비용이 적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리인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가 여럿이거나, 가계의 상황, 혹은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충분히 무리 거나 부담스러울 수 있는 비용이다.

아이를 위해서 경제 상황상 무리지만 꼭 영어유치원을 보내겠다는 마음이라면, 고민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만큼의 아웃풋을 아이에게 기대하게 되고 ‘기대만큼’, 혹은 ‘투자한 만큼’의 효용성이 없다면 아이를 푸시하거나 닦달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5세에서 7세의 아이들이 학습에 대해 그 정도의 압박을 받을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부모의 ‘교육’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면, 그래서 그 부담으로 (어릴 때는 울며 겨자먹기로 하지만) 장기적으로 흥미를 잃어버린다면 오히려 득보다 실이다.

‘영어유치원’이라는 ‘뜨거운 감자’로 논쟁이 벌어질 때 ‘경제적으로 가능하기만 하면 무조건 보낼 거다’ 혹은 ‘거긴 영어학원일 뿐, 어차피 수능에는 의미 없다’ 등의 흑백논리가 펼쳐지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시선이다. 경제적인 상황도 체크해야 하지만 아이의 성향을 잘 파악해서 결정해야 하고, 보내는 목적과 한계를 인지해야 무리하게 아이를 몰고 간다 거나 크게 실망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영어유치원의 장점은 분명했다. 언어는 노출이나 시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수학과 비교해보면 재능의 영역이 상대적으로 덜한 부분이 존재한다. 언어가 폭발할 시기에 영어를 접하게 되면 부모가 한국사람 이어도 바이링구얼(다중언어) 환경을 만들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또한, 어느 정도는 학습을 따라갈 수 있는 아이여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행동이 통제가 안되거나 폭력성향이 매우 심한 아이들을 만날 확률이 훨씬 적다. 부모 입장에서는 또래 집단에 대해 그나마 안심이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장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수와 언어의 개념, 문화, 역사가 한국이 아닌 미국식으로 확장이 되는 부분, 한글의 발달이 더뎌 지는 한글 지연현상, 다양한 친구들 과의 갈등상황에 대한 대처, 정서적 케어보다 학습적인 부분이 더 주가 되는 아쉬움 등은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장점과 단점을 놓고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기관을 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 역시 강남의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영유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아니다.

사교육 시스템 혹은 영어유치원을 극성맞은 부모의 유난 정도로 치부하며 터부시할 필요도, 과하게 아이를 몰아붙여서 선행 그 자체가 목적이 될 필요도 없다. 공교육에만 의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대치동이든 혹은 다른 학원가든 사교육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우리의 고민은 중심을 잡고 현명하게 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소현 님은 올해 8살 아이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기자,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브랜드 빌딩 비즈니스 스타트업 블랭크코퍼레이션 커뮤니케이션 담당 프로로 제 2의 인생을 설계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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