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호 태풍 ‘카눈’이 이동속도 시속 34㎞로 10일 오전 9시20분께 경남 거제에 상륙했다. 가뜩이나 느린 태풍에 속했던 카눈은 내륙을 훑으며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더욱 느려졌다. 시속 20∼30㎞ 속도를 한동안 유지했다. 여기에 충청권을 전후해 이동 방향을 북서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속도가 또다시 20㎞ 이하로 느려졌다.
이날 밤 9시 수도권에 진입한 카눈은 새벽까지 서울 일대에 많은 비를 뿌리며 영향을 미쳤다. 북한에 들어서는 11일 새벽에는 시속 15㎞ 내외를 유지할 전망이다. 지난해 9월 시속 40~60㎞로 한국에 상륙한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절반도 안 된다. 느린 이동 때문에 카눈이 한국에 머문 시간은 15시간 이상이다.
카눈이 ‘느림보’ 행보를 보인 이유는 지향류가 약하기 때문이란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지향류는 태풍 주변에 형성된 대기 흐름으로 태풍 진로를 결정한다. 보통 한국에 발생하는 태풍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남서에서 북동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하지만 최근 북태평양고기압이 한국 동쪽에 멀리 떨어져 있어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태풍 경로에 영향을 줄 만한 기단이 없어 바람이 불지 않는 것이다.
제트기류와 관련된 상층 기압골도 중국 만주 지역에 멀리 있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태풍을 견인하는 주변 힘이 없을 때는 태풍 자체의 힘만으로 느리게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태풍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 그에 비례해 피해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02년 8월 발생한 제15호 태풍 ‘루사’도 그랬다. 루사는 상륙 이후 진행 속도가 시속 18㎞까지 떨어지면서 20시간 넘게 한국에 머물렀다. 루사는 시간당 100.5㎜, 하루 강수량 870.5㎜에 이르는 기록적 폭우를 동반했고, 이로 인해 246명의 사망·실종자가 나왔다. 재산 피해 역시 5조1000억원 이상으로 국내 자연재해 사상 최대였다.
카눈은 10일 밤 12시 무렵 서울 북쪽 약 40㎞ 부근에 도달해 11일 새벽 휴전선을 넘을 전망이다. 11일 낮 12시께엔 평양 서쪽 약 30㎞ 부근까지 이동한다. 같은 날 오후 6시엔 신의주 남동쪽 약 80㎞ 부근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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