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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감췄던 건 한 여자의 이름이었다. <당신들의 천국> 등을 쓴 한국 대표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은 폐암 선고를 받은 뒤 이윤옥 문학평론가(65)에게 자신의 평전을 써달라고 부탁하며 편지와 일기, 소설 초고를 전부 내줬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심사 탈락 후 적은 저속한 욕설까지 담겨 있던 일기장에서 이청준이 오려낸 건 결혼 전 한때 연심을 품은 현영민 씨의 이름뿐이었다. 이 평론가는 현씨를 비롯해 이청준 소설 속 여성인물의 원형이 된 ‘이청준의 여성들’을 평전을 통해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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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이청준 작가의 15주기다. 그는 영화로 제작된 ‘서편제’와 ‘벌레 이야기’(영화 제목 ‘밀양’) 등 170편 넘는 작품을 발표하며 광활한 작품세계를 펼쳤다. 이 평론가는 한국 현대 문학사의 거목이었던 고인의 삶을 다시 쓰기 위해 10년 넘도록 자료를 분석하고 주변 인물을 찾아가 일화를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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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선생이 자서전을 썼다면 평전보다 엄격했을 것”이라는 게 이 평론가의 설명이다. 이 작가는 별세하기 3~4개월 전 이 평론가에게 “소설가는 작품으로 교묘히 자기합리화를 시도한다. 부디 네 상상력이 내 상상력을 이겨서 내가 꾀한 모든 자기합리화를 벗겨 내 맨얼굴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평전에서는 이 작가의 새로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다. 대문호가 부인 남경자 씨와의 연애 시절 “나에게 비둘기가 되어주오” 하는 글을 남겼다는 대목에선 웃음이 터진다. 글쓰기에 몰두해 사느라 집 비밀번호조차 몰랐다는 사실, 판소리뿐 아니라 클래식 애호가였다는 사실도 새롭다.
이 평론가는 이 작가에 대해 “모든 현상의 배면에 있는 본질을 보는 작가”라고 평했다. “우리를 억압하는 폭력, 부,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하면서 작품 속 개인이 오롯이 살아 있죠. 그래서 거대 담론이 실종된 21세기에 읽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앞으로 이런 소설가는 못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전 표지의 초상화는 서용선 화백이 이 책만을 위해 그렸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등을 수상한 서 화백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 중인 ‘빨간 눈의 자화상’을 그린 그 작가다.
이 작가가 완성된 평전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질문을 받은 이 평론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어요. 항상 존댓말을 하는 분이니 ‘이 선생, 애썼네요’ 하실 거 같습니다. 비난도 칭찬도 쉽게 안 하는 분이셨으니까….”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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