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영화 '작전' 속 그녀 '미스리' [돈앤톡]

입력 2023-08-14 11:02   수정 2023-08-14 23:26


20년여간 여의도가 사랑한 한 여인이 있습니다. 성이 이씨라는 것, 네모난 웃는 얼굴이라는 것만 알 뿐입니다. 축구장 약 400개를 합친 크기의 널찍한 섬인 여의도에서 그녀를 모르는 이는 없었습니다. 모르는 여의도인에게는 당연히 소개도 해주기도 했죠. 그녀 또한 그걸 원했으니까요.

여의도 타짜라도 되냐고요? 실은 증권가 대표 메신저인 '미스리'(MissLee)를 두고 한 말입니다. 미스리가 전성기 시절 보인 활약상은 영화속 첩보원인 007과 다름없었습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여의도 정보통들은 미스리를 통해 지라시를 주고받기 시작했는데요.

개봉 15년째인 지금도 주식 작전세력을 다룬 수작으로 평가받는 영화 '작전'에서도 미스리가 등장합니다. 극중에서 음지의 '설거지'(세력이 높은 가격에 개인 투자자들에게 보유 물량을 떠넘기는 것) 전문가인 우 박사가 미스리에 접속한 뒤 지라시를 수집·배포하는 장면이죠. 그러면서 우 박사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고급 정보 라인"이라며 "대한민국에서 얘네들 모르게 돌아가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미스리를 통해 남들보다 빠르게, 또 정확하게 정보를 받아 가공하는 게 이들이 앞서는 방식이었던 거죠.

지라시란 오늘날 넓게는 정·재계와 연예계 소문을 종합한 사설 정보지를, 좁게는 '받은글'이라는 글자로 시작하는 가십성 정보 등을 뜻합니다. 영화가 상영될 당시와 다른 점이라면 지라시의 접근성일 겁니다. 요즘엔 언론인과 일반 투자자 등 불특정 다수가 무료로 접할 수 있지만 2010년 중반까지만 해도 소수의 증권가 종사자들만 전달 받았거든요.
너도나도 '미스리'…그 시절 핵심정보요원

미스리의 전신은 1996년 학원 전산실에서 개발한 '마이챗'입니다. 학원 안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룹 전송과 시차 없는 쪽지 기능 등의 편리함이 부각되면서 2000년부터는 증권가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름부터 시대착오적인(?) '미스리'가 이 때 탄생한 겁니다.

입소문 효과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직원들은 PC에 메신저를 깔아서 정보를 주고받기 시작했습니다. 주식시장 참가자들은 미스리를, 채권·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야후를 주로 사용했죠. 메신저를 통해 주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단문의 정보를 투자자들과 펀드매니저 등에게 퍼나르는 '메돌이'라는 개념도 이 시기를 즈음해서 생겼습니다.

미스리는 받는 이를 그룹핑(모으기)해 주가 정보를 빠르고 대량으로 전달하는 게 특징입니다. 인적사항을 넣지 않고도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데다, 대화내용이 서버에 남지 않고 사용자 컴퓨터에서도 일정 한도를 초과하면 순차적으로 삭제됩니다. 지라시 최초 유포자들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급격히 불어난 인기에는 부작용이 따르는 법. 익명성과 보안성 등으로 주가조작을 노린 작전세력들의 도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선취매를 한 뒤 정보를 시장에 내놓는 방식이 성행했죠. 대표적으로 2012년 초 미스리를 통해 '북한 영변 경수로 대폭발'이란 루머를 수분간 200여명에게 전송함으로써 코스피와 코스닥 등 지수 급락을 이끌어 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문가와 언론인 등을 사칭해 쪽지를 보내오는 이들도 많았고요.
마지막 향해 달려가는 미스리…"아직은 끝 아니다"
미스리가 주춤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입니다. 미스리와 쌍둥이 격이었던 'EzQ 메신저'(옛 삼성Fn메신저·POP메신저)가 그해 5월 서비스를 종료했죠. 숱하게 서비스 장애가 일어난 가운데 인건비와 시스템 운영비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을 견뎌내지 못한 게 배경이었습니다.

살아남은 것은 미스리뿐인데 이 곳도 어깨가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텔레그램 등 '철통보안'으로 여겨지는 모바일 메신저와 유튜브 플랫폼 등이 급속도로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어선데요.

미스리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미스리 서비스의 유효 계정(6개월 사이 사용)은 5만~8만개로 파악됩니다. 전성기 시절의 유효 ID가 25만개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최대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서비스도 점점 줄고 있습니다. 현 미스리 운영사인 미소앤클라우드는 올 1월 미스리카페를 없앴고, 지난달부터는 메신저와 모바일 앱에서 운영됐던 투자정보·종목채팅 등 핵심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다만 미스리 측은 서비스를 계속 개선해 나갈 계획이란 입장을 보였습니다. 사측은 기자와 통화에서 "PC 중심으로 서비스를 운영 중"이라며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할 계획이 있고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나 대외적으로 알려드리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여의도 안팎에서도 미스리를 보는 시선이 갈리는데요. 증권사 한 홍보팀 직원은 "망 분리 예외 서비스라서 어쩔 수 없이 미스리를 써왔는데 기능도 제한적이고 누락되는 쪽지도 많다"며 "지금 상황에서 개선하지 않으면 현상유지도 힘들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증권사의 홍보팀 직원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홍보팀이나 WM부서에서 미스리를 애용했지만 이는 모바일 메신저가 대두되기 전이라서 가능했던 것"이라며 "미스리가 전화와 이메일을 대체했다면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등이 미스리를 대체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종합운용사 한 펀드매니저는 "금융권 물리적인 제약이 있는 만큼 미스리 같은 서비스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했습니다. 여의도 전용 메신저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여전할 것이란 얘깁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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