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미문(美文)을 구사하는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독서의 희열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책은 문장으로 지어 올린 집, 문장의 숲이다. 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건 마음을 울릴 단 하나의 문장을 찾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김응교 문학평론가가 최근 출간한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는 책을 구성하는 수많은 문장 중에서도 첫 문장에 주목한다. 소설과 산문집 37편의 탁월한 첫 문장을 선정해 그 문장이 책 전체를 어떻게 끌고 나가는지 분석했다. 독서 안내서이자 글쓰기 교본이다. 두 번째 문장,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읽도록 독자를 끌어들이는 첫 문장은 책의 관문이자 1번 타자이기 때문이다.
첫 문장은 독자에겐 시작일지 몰라도 저자에겐 마지막 문장이다. “탁월한 첫 문장이 안 나오면 생각날 때까지 기다리며, 아니 아예 기다리지 않고 첫 문장을 멀리 밀어둡니다. (…) 결국 첫 문장과 제목은 가장 나중에 다가오곤 하지요.”
이토록 첫 문장을 강조한 책의 첫 장을 차지한 건 어떤 작품일까. 바로 “거기 누구냐”고 물으며 시작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첫 장면이다. 김 평론가는 “이 질문은 무대 위에서 펼쳐질 비극을 예감하게 하는 질문”이라며 “무대를 보는 청중에게도 묻는 말”이라고 말한다. 결국 첫 장면의 첫 대사, 첫 문장이 ‘실존’을 고민하는 작품의 주제를 함축한다는 것이다.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인간 실격> <노인과 바다>와 같은 고전뿐 아니라 김호연의 베스트셀러 소설 <불편한 편의점> 등 최근 작품도 두루 살피며 적확한 첫 문장을 탐색한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 출간된 <문장의 맛>은 작가이자 언론인, 편집인인 마크 포사이스가 독자의 마음에 콕 박힐 문장을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 부제는 ‘셰익스피어처럼 쓰고 오스카 와일드처럼 말하는 39개의 수사학’이다. 의인법, 대조법, 반복법 등 인상적 문장을 쓰기 위한 39개의 수사적 기법을 정리했다.
탁월한 작품이나 작가를 만드는 건 우연한 천재성이 아니라 잘 닦인 기교라고 저자는 말한다. 심지어 대문호 셰익스피어조차 ‘사랑의 헛수고’ 같은 초창기 희곡은 형편없다는 것이다. “모든 직종의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기량이 더욱 나아진다. 당연하다. 더 배우고 더 연습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작가라고 이들과 딱히 달라야 할 이유가 있을까.”
39개의 수사법 용어를 기억할 필요는 없다.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만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다. 회의 시간에 상사를 성공적으로 설득하고 싶은 직장인, 상품의 장점을 머릿속에 콕 박히게끔 설명하고 싶은 영업맨도 ‘문장의 맛’ ‘말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다만 영국 작가가 쓴 책이라 영미권 문학의 원문, 영어의 말맛을 예시로 사용하는 것은 한국 독자로서 아쉬운 점이다. 영미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친숙한 독자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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