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가격의 30~40%는 배터리가 차지한다. 전기차가 얼마나 먼 거리를 잘 달리는지도 상당 부분 배터리에 달려 있다. 그만큼 중요한 배터리를 그동안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는 전문 제조사에서 납품받아 탑재하기만 했다. 내연기관차로 따지면 엔진을 외부에서 가져와 차에 조립하기만 한 셈이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무르익으면서 완성차 업체들도 직접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배터리 기술 내재화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SK온,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제조사에서 배터리를 납품받을 때도 협업을 통해 공동 개발해왔다. 전기차를 개발할 때 설정하는 주행거리, 전비, 동력성능, 충전시간 등 다양한 목표 성능에 맞춰 제조사와 배터리 시스템 설계를 최적화하는 것이다.
작년 1월에는 ‘배터리개발센터’를 설치했다. 배터리의 셀 단위 및 시스템 설계부터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안전성 향상 등의 연구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9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리튬금속 배터리, 코발트 없는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도 힘을 싣고 있다. 내년 의왕연구소에 차세대 배터리 연구동을 세워 연구개발 및 양산성 검증을 위한 전용 공간도 마련한다. 이를 통해 2025년에는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시범 생산하고, 2030년 전후로 본격 양산하겠다는 목표다.
BMS 기술 차별화도 시도하고 있다. BMS는 배터리를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보호하는 동시에 자동차가 배터리를 쓰는 데 필요한 제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 파악하고 전기차 주행과 충전이 허용 출력 내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전기차의 전비 성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수십 수백 개의 배터리 셀을 개별 제어해 배터리 수명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이상 징후를 발견하거나 고장이 생기면 배터리 최대 출력을 줄여 전기차의 최고 속도를 제한하는 ‘안전장치’ 역할도 한다.
이런 BMS는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기술 수준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유수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가운데서도 아직 자체 BMS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일찌감치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면서 BMS 핵심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전기차 업계에서도 BMS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BMS 제어 기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모니터링 정보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차량의 BMS 제어 상황을 원격으로 상세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배터리 진단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끌어모으고 있다. 대형 물류업체나 택시업체처럼 주행 거리가 많고 배터리 정보가 풍부한 모빌리티 서비스 업계와 협업해 정보를 제공받는다. 이런 빅데이터는 개발한 기술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로 쓰이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배터리 완제품을 공급만 받는다면 좋은 전기차를 만들 수 없다”며 “앞으로도 배터리 내재화에 투자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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