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농산물 기업, 돛단배로 옥수수 실어나른다는데…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입력 2023-08-22 08:18   수정 2023-09-11 00:01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해상에 상업용 돛단배(범선)가 돌아온다. 1800년대초 증기선이 처음으로 항해를 시작한 뒤 외면받았던 범선의 상업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해운업계의 탈탄소화 노력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 최대 농산물 기업 카길은 21일(현지시간) "길이 37.5미터짜리 돛 2개를 장착한 벌크선 픽시스오션의 시범 항해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돛만으로 배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풍력 보조 장치로 연비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구상이다. 선박 정보업체인 마린트래픽에 의하면 픽시스오션은 8만1000t에 이르는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8만1000 DWT(재화중량톤수)급 벌크선이다. 일본 미쓰비시상사가 소유하고 카길이 운용하고 있다.

갑판에 설치된 풍력 추진용 돛의 정식 제품명은 '윈드윙스'다. 영국 기업 바(BAR)와 노르웨이 기업 야라마린이 만들었다. 카길은 윈드윙스를 통해 픽시스오션의 탄소배출량을 최대 3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픽시스오션은 첫 항해로 브라질에서 덴마크까지 옥수수를 실어나를 예정이다.

카길의 얀 디엘레만 해운사업부 사장은 "선박을 움직이는 동력이 돛에서 엔진으로 진화한 지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버린 만큼 해운업계에서 풍력의 능력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며 "탈탄소화를 위한 갖가지 시도 중에서 '풍력'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카길은 과거에도 풍력 추진 선박 도입을 시도했었다. 2011년 독일 스카이세일즈와 협력해 화물선 아기아 마리나에 돛을 다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4년 뒤 해당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디엘레만 사장은 이와 관련해 "일부는 기술적 관점에서 돛에 대해 회의적이고 일부는 (화주 등 고객사의 지원 없이 투자하는 데 따르는) 위험 일체를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도 "탄소배출이 없는 대체 연료를 개발하는 데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무역량의 약 90%를 담당하는 해운산업은 탄소배출의 주범으로 꼽힌다. 아마존, 유니레버, 이케아 등 해운업계의 굵직한 고객사들은 "2040년까지 무공해 선박만을 이용하겠다"고 선언해 이들을 압박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도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08년 대비 40%를 절감하고 2050년엔 절반 이상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규제를 강화했다.

이 때문에 풍력으로 대형 상선의 추진력을 보조해 연비를 향상시키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작년 여름 싱가포르 해운사 버지벌크도 "자사의 21만 DWT급 벌크선에 풍력 추진용 돛(윈드윙스)을 설치하는 개조 작업을 시작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개발 중인 풍력 추진 시스템은 윈드윙스처럼 날개 돛 모양의 '윙 세일' 외에도 '로터 세일(Rotor Sail)' 형태가 있다. 원기둥형 구조물의 로터 세일은 바람이 기둥을 회전시켜 만드는 압력 차이로 선박을 운항하는 원리다. 영국 아네모이 마린, 독일 에너콘 등 해외 기업 외에도 한국 기업 팬오션 등이 로터 세일 선박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해운업계는 저탄소 대체 연료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수소, 암모니아 등 다양한 친환경 선박이 시도되고 있지만, 메탄올 선박의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르다. 영국 해운 및 에너지 연구원 트리스탄 스미스는 "돛은 일반적으로 실행 가능한 선택지이긴 하지만 갑판 공간이 제한된 선박이나 바람이 불리한 항로에서는 실용적이지 않다는 한계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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