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한 것은 약 5년 7개월 만으로, 한·미·일을 포함한 서방과 북·중·러는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나) 여야는 4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를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최근 화제가 된, 북한의 ICBM과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전한 뉴스 문장 한 토막이다. 두 문장의 서술 부분은 서로 다른 형태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포인트는 ‘날카로운 대립각’과 ‘날 선 공방’이다.
언론에선 이미 1990년대 중반께부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초반에는 ‘대립각을 세우는/형성하고/구축하며’ ‘대립각으로 맞서’ ‘대립각이 커져가며’ 등 다양한 서술어와 함께 사용했다. 이는 새로 나온 말에 대한 개념 정리가 덜 돼 있을 때 생기는 일반적 특징이다. 정형화된, 궁합이 잘 맞는 서술어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대립각은 2000년대 들어 쓰임새가 급격히 늘면서 점차 ‘대립각을 세우다’란 말로 수렴돼 갔다. 하지만 그후로도 오랫동안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대립각’이 표제어로 오르지 않았다. 2010년까지도 국어원에선 대립각의 표기를 ‘대립 각’으로 띄어 쓰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대립’과 ‘각’이 각각의 단어라는 점에서다. 지금은 웹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다. 이 말이 정식 단어로 대접받은 게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셈이다. 그만큼 새 말이 단어로 인정받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어로서의 ‘대립각’을 가치 있게 하는 요소는 접미사처럼 쓰인 ‘각’이다. ‘각’의 정체는 ‘뿔 角’이다. 이 말이 요즘 여러 파생어를 낳아 논란이 되기도 한다. 도전각, 소송각, 치킨각, 성공각, 승리각, 실패각, 킬각, 런각 등 다양하게 쓰인다. 파생어가 많다는 것은 말의 생산성이 뛰어나다는 얘기고, 이는 곧 효용 가치가 크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장수’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다시 ‘각’의 접사 기능을 굳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말과 글을 다루는 곳에선 지켜볼 만하다.
‘角(각)’은 원래 짐승의 뿔을 그린 글자다. 이 뿔은 짐승의 머리에 돌출된 형태로 나와 있어서 ‘모나다’나 ‘각지다’라는 뜻이 생겼고, 면과 면이 만나 이뤄지는 모서리를 나타내는 말이 됐다. ‘각을 세우다’를 비롯해 ‘각을 잡다, 각을 맞추다, 각이 나오다, 각이 보이다, 각을 재다’ 식으로 다양한 서술어와 결합한다.
무언가에 도전하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싶으면 “~ 도전각!” 하고 외치는 식이다. 유난히 치킨을 먹기 좋을 때는 ‘치킨각’이다. 소송을 준비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소송각을 재다’라고 한다. ‘-각’ 파생어는 우리말의 조어력을 새삼 돋보이게 한다. 그것은 ‘언어적 일탈’에서 오는 효과라는 점에서 다른 신조어와 결이 좀 다르다. ‘날 선 공방’이니 ‘날 선 대립’ ‘날카로운 공방’ 같은 상투적 표현에 비해 ‘~ 대립각’은 파격의 말맛을 더한다. 전통적으로 써 오던 정형화된 말을 거부하고 일탈에서 오는 ‘긴장감’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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